'잔소리' 누나 살해 후 농수로에 버린 남동생…발인 때 영정 들고 시치미
4개월간 살아있는 것처럼 속여…범행 뒤 여친과 여행 [사건속 오늘]
아버지 "죽은 딸도 죽인 아들도 내 자식…" 묘지·구치소 방문 오열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과소비'를 탓하는 친누나를 살해하고 시신을 농수로에 버린 뒤 누나가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민 남동생이 있다.
누나의 시신이 범행 4개월 이틀 만에 발견된 뒤 치러진 장례식에선 누나 영정 사진을 들고 침통한 표정을 짓는 등 부모 친척들을 속여 넘겼다.
이런 아들을 위해 재판정에 선 아버지는 "죽은 딸도, 누나를 죽인 놈도 다 내 자식"이라며 선처를 호소하면서 흐느꼈다.
◇ 영장 심사 5시간여 만에 구속…왜 죽였냐, 사이 나빴냐 질문에 묵묵부답
2021년 5월 2일 인천지법 영장전담재판부(남해인 재판장)는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A 씨(27)에 대해 심사 5시간여 만에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2020년 12월 19일 오전 2시 50분쯤 인천시 남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친누나 B 씨(30대)를 살해한 뒤 같은 달 28일 인천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 농수로에 버린 혐의로 구속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한 A 씨는 '누나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나', '자수할 생각 없었나',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은'이라는 등 쏟아지는 질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부모 대신한 누나, 툭하면 외박· 카드 빚· 사치 일삼는 동생 야단…'네가 뭔데 잔소리' 살해
B 씨는 경북 안동에 있는 부모를 대신해 남동생을 건사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이런저런 잔소리를 했다.
2020년 12월 18일 밤, A 씨가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오자 "뭐가 되려고 이렇게 사냐, 툭하면 외박하고 필요 없는 물건 사들이고, 네가 진 카드 빚이 얼마인 줄 아냐"며 질책했다.
A 씨는 "그만하라"며 짜증을 냈다. 이에 B 씨는 "아직 정신 못 차렸다"며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동생의 잘못을 꺼내 보였다.
그러자 A 씨는 집 안에 있던 흉기를 찾아 흉기 끝이 부러질 때까지 누나를 마구 찔렀다.
◇ 누나 시신 여행용 가방에 담아 유기 장소 궁리…범행 5일 뒤엔 여자 친구와 성탄 이브 여행까지
일을 저지른 A 씨는 대형 여행용 가방에 누나 시신을 담아 우선 아파트 옥상 공용창고로 옮겼다.
겨울철에 접어든 관계로 부패 냄새가 심하게 나지 않고 또 추운 날 옥상에 올라오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노린 A 씨는 시신 유기 장소를 찾기 위해 살인 사건 및 시신 유기와 관련된 기사 검색에 나섰다.
그러면서 누나 살해 5일 뒤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여자 친구와 여행을 떠나는 대담한 면을 보였다.
A 씨는 범행 10일째인 12월 28일 새벽, 시신이 든 여행용 가방을 빌린 차에 실은 뒤 인적이 드문 강화도 석모도로 갔다.
시신이 든 가방이 물 위에 떠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가방 안에 소화기, 페인트 통 등을 잔뜩 집어넣은 A 씨는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농수로 옆으로 가 밀어 넣었다.
당시 농사철이 아닌 관계로 농수로 주변엔 인적이 끊겨 A 씨의 범행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누나 살아 있는 것처럼 위장, SNS에 글 남겨…누나 이름으로 대출받아 펑펑
A 씨는 B 씨 휴대전화에서 유심을 빼내 다른 휴대전화에 옮겨심은 뒤 B 씨 이름으로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누나가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또 '사치하지 말라'는 누나의 가르침을 비웃기라도 하려는 듯 모바일 뱅킹을 이용해 B 씨 이름으로 600만원을 대출을 받아 인터넷 쇼핑을 하고 배달 음식을 사 먹었다.
또 B 씨 휴대전화로 360만원을 소액 결제해 사들인 게임 아이템으로 밤늦도록 게임을 했다.
부모가 '누나가 왜 연락이 없냐'고 궁금해할 때면 '누나 바쁜 모양이다'며 얼렁뚱땅 넘겨 버렸다.
◇ 아버지 '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실종 신고…누나 휴대전화로 '지금 남친과 여행중' 문자
그러던 중 아버지 C 씨는 두 달째 전화 통화도 되지 않는 딸을 이상하게 여겨 2021년 2월 14일 경찰에 실종 신고했다.
이 사실을 안 A 씨는 담당 경찰이 B 씨 휴대전화로 연락을 취하자 누나 휴대전화를 이용해 '부모님이 오해한 것 같다. 남자 친구와 여행 중이다'는 문자를 보내 경찰 수사를 방해했다.
아울러 자신이 B 씨 이름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한 내용을 캡처해 담당 수사관에 넘겨주기도 했다.
A 씨는 부모에게도 이런 방법으로 '누나가 장기 여행을 간 것 같다', '잘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며 안심시켜 4월 1일 실종신고를 취소하게 했다.
◇ 시신 유기 후 매일 '석모도' '시신 유기' 인터넷 검색…범행 4달 2일 뒤 시신 발견
A 씨는 시신을 석모도 농수로에 버린 뒤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석모도' '시신 유기' '시신 발견'을 키워드로 한 인터넷 검색을 실시했다.
2021년 4월 21일 농사 준비를 위해 농수로 점검에 나섰던 마을 사람에 의해 발견된 B 씨 시신은 물에 부푼 상태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사인이 '흉기에 의한 대동맥 손상' 살해된 시기는 '12월 중순'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인천 경찰청은 수사 전담반을 편성 범인 검거에 나섰다.
◇ 딸 사망 소식에 통곡하는 부모, 누나 살해한 남동생은 버젓이 누나 영정 들어
경찰로부터 딸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C 씨 부부는 오열했고 A 씨도 슬픈 표정을 짓는 척했다.
부검이 끝난 직후인 2021년 4월 25일 B 씨 시신은 화장 절차를 거쳐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발인과 안장식 때 누나 영정사진을 들고 맨 앞에 선 A 씨가 범인이라는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B 씨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 결과 A 씨가 범인이라는 결정적 증거들이 속속 나왔다.
경찰은 A 씨가 B 씨 이름으로 대출을 받았고 숨진 B 씨 이름으로 SNS 메시지를 보낸 점 등이 그것이었다.
◇ 남동생, 뉴스1 등에 "실종 신고 없었다는 기사 내려라, 아니면 법적조치" 협박…
B 씨 관련 뉴스가 쏟아지는 가운데 A 씨는 누나 장례식을 마친 이틀 뒤인 4월 27일 뉴스1, MBC 등에 항의를 가장한 협박 메일을 보냈다.
A 씨는 뉴스1에 "실종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부분은 틀렸다 기사를 내려라", "보도된다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 "사실이 아닌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듣는다는 것 자체가 신경이 예민해지고 허위사실 유포 내용을 보면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고 있다", "다른 기자들에게도 전달해 달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A 씨는 뉴스1 담당 기자가 '실종신고 했는지 안 했는지 경찰에 확인해 보자'고 하자 "경찰이 실종신고를 안 했다고 하더냐"며 경찰 수사 상황을 떠보기까지 했다.
◇ 경찰, 시신 발견 8일 만에 남동생 범인으로 특정…형사대 안동으로 급파 검거
인천 경찰청은 시신 발견 8일째인 2021년 4월 29일, A 씨를 범인으로 특정하고 안동으로 형사대를 급파해 부모와 함께 있던 A 씨를 검거했다.
29일 밤 수사본부가 꾸려진 인천 강화경찰서로 압송된 A 씨는 취재인의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A 씨가 공개석상에서 입은 연 건 1심 재판 때부터.
◇ "누나 마음 알아보지 못했다" 반성…아버지 "오전엔 아들 면회, 오후엔 딸이 잠든 가족공원"
A 씨는 2021년 7월 13일 인천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김상우)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순간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저를 걱정해 줬던 누나를 살해했다"며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했다.
이어 "누나의 마음을 알아보지 못하고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드려 원망스럽다"며 고개 숙였다.
증인석에 선 아버지 C 씨는 "딸이 부모를 잘못 만난 탓으로 고생만 하다가 꿈도 제대로 한 번 펼쳐보지 못하고 동생에 의해 하늘나라로 갔다"며 오열했다.
C 씨는 "오전엔 아들의 면회를 하러 가고 오후엔 딸이 잠들어있는 가족공원으로 가고 있다"며 "그래도 못난 아들이 저희 품에 빨리 돌아올 수 있게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엎드렸다.
◇ 아버지 "험한 마음 먹기도 했지만 아들 누가 돌볼까 싶어…"
"죽은 놈도 자식이고 죽인 놈도 모두 제 자식이다"며 아들 선처를 호소한 C 씨는 "미칠 것 같아 세상을 등지려고 마음먹었지만 (그러면) 아들놈을 건사할 사람도 없고, 가족공원에 혼자 외롭게 있는 딸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 그러질 못했다"고 울먹였다.
그러나 검찰은 △ 누나를 흉기 끝이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버린 점 △ A 씨가 범행 5일 뒤 여자친구와 여행을 간 점 △ B 씨 명의로 대출을 받는 등 최소한의 반성의 태도를 보였는지 의심스러운 점 △ 과연 A 씨가 B 씨의 친동생일지 의문이 들 정도로 범행 수법이 잔혹한 점 등을 들어 무기징역형을 구형했다.
A 씨는 2021년 8월 12일 1심에서 징역 30년형을 선고받자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지만 기각당해 옥살이하고 있다. A 씨의 만기 출소일은 2051년 4월 29일이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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