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OT에 소환된 이재명·장제원"…'정치 이야기' 금기 깬 MZ

정치 콘텐츠 즐기는 MZ 늘어…"정치 얘기하면서 왜 싸우죠?"
"이념 벗어나 재미로 소비…금기 깨는 쾌락도"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홍유진 서상혁 기자 = # 다음 중 애인과 주말에 함께 읽고 싶은 책을 골라주세요. 1번 마이너리티 이재명, 2번 구수한 윤석열. 퀴즈는 계속된다. 다음 중 떨어져서 가장 아쉬운 후보는? 1번 이회창, 2번 정동영, 3번 홍준표, 4번 이재명. 문제가 나오자마자 게스트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인기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프로그램 <나락퀴즈쇼>의 한 장면이다.

대화의 장에서 배제돼 왔던 '정치 얘기'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그동안 정치 문제를 화제로 삼는 것을 기피하는 분위기였지만 일부 MZ세대를 중심으로 금기가 서서히 깨지고 있다.

지난 2일 만난 직장인 김 모 씨(27·남)는 "요즘 술자리 모임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주제가 정치 이야기"라며 "이번 총선 때도 단골 술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개표방송을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 얘기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건설적이라는 점이 매력"이라며 "시시콜콜한 연예인 얘기와 달리 정치 주제는 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과 입장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어서 좋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김 모 씨(여·33)는 "터부시되던 정치 이야기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유튜브 채널에서 접할 때마다 신선하고 재밌다"며 "정치는 항상 따분하거나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곳에서 접하니 오히려 더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최근 중앙대학교 '새내기 배움터(OT)' 행사에서는 "가장 존경하는 선배님을 고르시오. 1번 이재명, 2번 장제원, 3번 권성동, 4번 김남국"이라는 내용의 퀴즈가 출제되기도 했다. 모교 출신 정치인 중 선호하는 인물을 고르는 일종의 인기투표다. 신입생 환영 행사에서 정치 주제가 거부감 없이 오가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운동권 세대와 달리 MZ세대들이 정치 이념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이 정치 담론 활성화에 한몫했다고 분석한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세대 특성상 불필요한 언쟁으로 번질 일도 없다는 것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분법적인 정치 이념의 기성세대와 달리 청년 세대는 훨씬 중립적인 입장에서 정치 콘텐츠를 소비한다"며 "좌우 상관없이 정치 풍자 콘텐츠를 재미로 즐기는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정치 얘기에 핏대를 세우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북 고창에 사는 취업준비생 권 모 씨(25)는 "단순히 정당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정책이나 정치인의 공과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는 편"이라며 "서로 존중하면서 대화하다 보니 합리적인 토론으로 이어져 다툰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유 모 씨(27)도 "정치 얘기를 먼저 꺼내는 친구들은 대부분 합리적으로 서로의 의견을 잘 들어준다"며 "생각지 못했던 측면에서 '이 문제를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하는 인사이트를 얻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청년 세대의 녹록지 않은 현실과 정치적 피로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치를 무겁게 받아들이거나 정치에 분개하기보다는 재미 요소로 소비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며 "그간 금기시돼 왔던 정치 이야기를 하는 데서 오는 쾌감도 반영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아직 정치 이야기를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김 씨는 "친한 친구들은 괜찮지만 정치를 주제로 얘기할 때 상대에 따라 주저하기도 한다"며 "나락퀴즈쇼 같은 콘텐츠 역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시대적 상황을 비꼬는 블랙코미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ym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