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사람 안 찔러봤지? 한번 해봐"…피투성이 시신 둔 채 친구들과 '킥킥'

3대 독자 대학생,이태원 화장실서 이유없이 9차례나 찔려 사망
진범 패터슨, 미국으로 출국…20년만에 20년형 [사건속 오늘]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최악의 미제 아닌 '미제사건'으로 불렸던 이태원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를 지목하고도 초기수사의 허점을 노출해 진범을 밝히는데 무려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마저도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상영되고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12년 만에 재수사가 진행되며 얻은 결과다.

학업 성적도 뛰어나고 속 한번 썩인 적도 없는 3대 독자. 그런 아들을 누군가에게 '아무 이유 없이 그저 노리개삼아' 살해 당해 잃은 유가족들의 분하고 억울한 마음은 헤아릴 수가 없다.

◇ 여자친구와 있던 햄버가게 화장실서 피투성이로 발견된 대학생

1997년 4월 3일 밤 10시. 이태원에 있던 홍익대 재학생 조중필 씨는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여자친구와 함께 근처 버거킹 햄버거 가게에 갔다. 여자친구가 음식을 주문하는 사이 조 씨는 화장실에 들어갔고, 곧이어 미국 국적자 17세의 아서 존 패터슨과 18세의 에드워드 건 리가 화장실에 따라갔다.

1997년 체포 당시 패터슨. 유튜브 채널 디글 갈무리

잠시 후 조 씨는 화장실 좌측 소변기 아래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채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경찰과 119구급대원들이 사건 현장에 도착했지만 흉기에 9차례나 찔린 조 씨는 이미 사망했다.

사건 다음 날 미국 육군범죄수사사령부에서는 익명의 제보를 받았는데 범인이 패터슨이라는 내용이었다.

패터슨은 미 육군 소속 유럽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16세 때 캘리포니아 소년원에 구금된 전력도 있었다. 경찰은 패터슨을 용의자로 판단하고 수사 방향을 잡았으나 에드워드 건 리가 자신도 아버지에게 사건에 연루되었음을 자백해 용의자는 2명이 되었다.

◇ 엇갈리는 진술들…친구들 vs 패터슨 vs 에드워드 건 리

경찰 조사에서 당시 현장에서 같이 있었던 친구 일행은 "에드워드 건 리가 패터슨에게 "너 사람 찔러본 적 없지? 한번 해봐"라고 웃으며 도발했고, 둘이 화장실로 갔다"고 진술했다. 이후 술집으로 피묻은 셔츠를 입은 채 온 에드워드 건 리가 "'어떤 사람을 칼로 목을 찔렀다. 내가 한 게 아니야, 재미 삼아 한 거야'라며 웃고 있었다"고 말했다.

죽은 조씨가 칼에 찔려 사망한 화장실. 유튜브 채널 디글 갈무리

하지만 패터슨은 "에드워드 건 리가 뭘 보여준다고 화장실로 따라오라고 하여 단지 마약을 보여줄 것이라 생각하고 따라갔는데, 갑자기 그가 화장실에 있던 남자를 칼로 여러 차례 찔렀다"고 구체적인 진술을 했다.

반면 에드워드 건 리는 "패터슨이 뭔가 보여줄 테니 화장실로 가자고 하였고, 자신은 손을 씻으려고 간 것뿐이었다"며 "패터슨이 갑자기 칼로 사람을 찌르기 시작했다"고 엇갈린 말을 했다.

◇ 대한민국 검찰 vs 미군 범죄수사대의 다른 수사 결과

이 사건을 조사한 용산 경찰서 K 팀장과 미군범죄수사대는 아서 패터슨이 온몸이 피투성이라는 점, 손에 미국 갱단의 마크가 있고 살해 방법이 그 갱단의 수법과 비슷하다는 점 등을 들어 패터슨을 용의자로 지목하였으나 수사를 담당한 P 검사는 법의학적인 판단(부검 결과) 등을 근거로 에드워드 건 리를 용의자로 지목했고 그를 살인죄로 기소하면서 사건이 꼬이게 된 원인을 제공했다.

조 씨 살해 책임을 서로 떠넘긴,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 유튜브 채널 디글 갈무리

당시 에드워드 건 리를 살인범으로 기소하는 데 여러 가지 근거가 제시됐다.

첫 번째는 키와 체격이었다. 부검의는 피해자 목의 자창을 봤을 때 176㎝의 피해자 조중필보다 가해자의 키가 커야 한다는 추정을 했다. 그리고 아서 패터슨은 피해자인 조중필보다 키가 작고 왜소했으나 에드워드 건 리는 180㎝, 105㎏로 피해자보다 훨씬 키도 크고 건장한 체격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피해자가 쓰러졌을 때 공격했다고 가정할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없다.

또 하나는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였다. 에드워드 건 리는 거짓으로, 패터슨은 진실로 나온 것. 하지만 당시 거짓말탐지기 자체가 신뢰도가 낮아서 30%가 넘는 오차를 보였고, 또 한국말이 서툰 에드워드 건 리에게는 통역 요구가 묵살됐고, 한국어가 상대적으로 유창한 패터슨은 통역의 도움을 받으며 편안한 상태에서 조사를 받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가해자가 범행 당시의 충격으로 기억을 잃을 수 있는 해리성 장애를 이유로 에드워드 건 리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패터슨은 가해자가 칼을 잡은 방법과 찌른 부위와 횟수까지 정확하게 기억하여 증언했고 이는 피해자의 몸에 남은 자창과도 일치했지만 상대적으로 에드워드 건 리는 사건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기억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패터슨과 함께 공범으로 인정된 에드워드 리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 처벌할 수 없게 됐다. 유튜브 채널 디글 갈무리

◇ 답답한 재판 결과…찝찝한 석방 그리고 해외 도주

서울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서는 검사의 기소와 근거자료를 인정해 에드워드 건 리에게 살인죄로 각각 무기징역(1심)과 징역 20년(2심)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 하였고, 결국 서울고법에서는 새로운 증거를 찾지 못하여 에드워드 건 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아서 패터슨 또한 단순 흉기 소지로 기소되어 징역 1년 6개월의 유죄 판결을 받고1998년 8·15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에드워드 건 리가 무죄 판결을 받음에 따라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 그를 재기소할 수 없었던 유족들은 살인죄가 아닌 흉기소지죄로 기소되어 형을 받았던 패터슨을 고소했다. 검찰이 패터슨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였으나 출국금지 조치를 미룬 사이에 패터슨은 미국으로 도주, 사건은 미제로 남게 됐다.

2009년 9월 개봉된 故 홍기선 감독의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흥행 재수사…18년 만에 용의자 송환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주한 뒤 10년 후 이 사건을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져 상영돼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국정 감사에서까지 해당 사건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의원들에 원성에 검찰은 재수사를 선언했다.

검찰은 2009년 9월 미국 당국에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요청, 패터슨은 2011년 5월 미국에서 검거됐다. 미국 LA연방법원은 2012년 10월 그에 대한 한국 송환을 결정했고, 2015년 9월 23일 그는 인천공항을 통해 송환됐다. 이후 경찰은 '혈흔형태분석'과 당시 상반된 진술 등을 통해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대법원 3부는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38·당시 만 17세)에 대한 상고심 선고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했다. /뉴스1

◇ 진실 찾는 데 걸린 20년…법정최고형 '단죄'

대법원은 '이태원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20년 만인 2017년 1월 25일 아서 존 패터슨(38)이 '진범'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범행 당시 만 17세였던 그에게는 법정최고형인 징역 20년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패터슨이 피해자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음이 의심할 여지 없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판단했다.

이날 재판을 지켜본 조 씨의 어머니 이 씨는 결과에 대해 "우리 마음으로는 (패터슨을) 사형을 주고 싶은데 미성년자 때 저지른 것이라 20년밖에 못 준다고 했다"며 "그거라도 위안을 삼아야지 어떡하겠냐"고 심경을 밝혔다.

또 패터슨과 함께 공범으로 인정됐지만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 처벌할 수 없게 된 에드워드 건 리에 대해선 "법이 좀 바뀌어서 다시 판결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씨는 "하늘에 있는 우리 중필이가 한을 풀었다"며 "다음생에는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태원 살인사건' 피해자 故 조중필 씨 어머니 이복수 여사 ⓒ News1 유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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