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에 시신 싣고 버젓이 손님 태웠다…여성 연쇄살인 '죽음의 택시'
6년새 3명 죽인 택시기사 안 들키자 계속 영업 [사건 속 오늘]
피해자 계좌서 현금 빼갔지만 경찰 부실수사, 추가 살인 불러
- 김송이 기자
(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2010년 3월 28일 오전 10시 40분께 대전 대덕산업단지의 한 도로에서 여성의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경찰 신고가 접수됐다. 여성은 손발이 결박돼 있었고 얼굴과 목이 청 테이프로 칭칭 감겨있었다.
수년간 살인을 저질러도 발각되지 않아 방심했던 걸까. 범인은 트럭과 담벼락 사이에 시신을 유기하는 자신을 아무도 못 봤을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CCTV가 그를 비추고 있었다.
영상에는 시신이 목격자에게 발견되기 9시간 전인 오전 1시 30분께 통통한 체격의 남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차 트렁크에서 꺼낸 시신을 버리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2004년부터 연쇄 살인을 저질러온 청주 택시 기사 안남기의 범행 장면을 담은 결정적 증거였다.
◇ 살인 저지르고도 6년간 버젓이 돌아다닌 '죽음의 택시'
첫 번째 피해자는 23세 여성 전 모 씨였다. 채팅을 통해 알게 된 남성을 만나기 위해 청주에 왔던 전 씨의 마지막 행적은 청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였다. 전 씨는 2004년 10월 16일 충남 연기군 조천변 도로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전 씨의 시신은 이불에 둘러싸인 채 노끈으로 묶여있었다. 사인은 질식사였다.
두 번째 피해자가 발견된 건 5년이 흐른 2009년 9월 26일이었다. 청주 무심천에서 낚시하던 낚시꾼이 장평교 아래에서 41세 여성 김 모 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손발은 청 테이프로 결박돼 있었고, 하의가 일부 벗겨져 있는 상태였다. 김 씨의 사인 역시 질식사였다.
김 씨는 앞서 닷새 전인 21일 청주 상당구의 한 술집에서 직장 동료들과 회식 자리를 가진 뒤 연락이 두절됐다. 김 씨의 동료는 "김 씨가 회식 마치고 택시 타고 갔다"고 증언했다.
◇ 미흡했던 수사…범인, 현금인출기에 찍혔는데도 못 잡았다
경찰은 김 씨 동료의 말을 듣고 택시 회사를 상대로 탐문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택시 회사의 관계자만 만났을 뿐 기사 한 명 한 명을 조사하진 않았다. 경찰은 결국 김 씨를 태운 택시 기사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후 경찰은 김 씨의 현금 인출 기록을 확인해, 김 씨의 회식 다음 날인 22일 오전 7시께 청주의 한 편의점 인출기에서 누군가가 김 씨의 돈을 인출한 사실을 알아냈다.
인출기 카메라에는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찍혔으나 경찰은 그를 잡지 못했다. 8일 후인 30일, 청주 시내 모 은행에서 범인의 추가 현금 인출 시도가 있었으나 이번에도 경찰은 검거에 실패했다.
경찰은 계좌 사용 시도가 있을 시 경찰에 신고되는 '부정 계좌' 등록을 했어야 하나, '지급정지'만 해두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경찰의 뼈아픈 실수 때문에 범인은 해가 바뀐 뒤 또 한 명의 피해자가 숨지고서야 붙잡혔다.
◇ CCTV 영상 확보로 수사 급물살…시신 발견 당일 바로 체포
범인의 마지막 피해자인 24세 여성 송 모 씨의 마지막 모습은 2010년 3월 26일이었다. 송 씨는 청주 남문로에서 친구 생일파티를 마치고 오후 11시께 안남기의 택시에 올라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경찰은 송 씨 사건으로 확보한 CCTV 속 통통한 남성이 택시를 몰고 온 것을 확인하고, 송 씨의 집이 청주인 점과 시신이 발견된 곳이 대전인 점을 주목했다. 경찰은 시신이 유기된 시각 전후로 청주와 대전을 오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신탄진 나들목을 지난 모든 택시를 추려냈다.
경찰이 추려낸 60여 대의 택시 중 유독 수상한 한 대가 있었다. 번호판을 잘 볼 수 없도록 반사 테이프를 부착해 놓았던 것. 경찰은 정밀 분석으로 차 번호를 알아냈고, 청주의 한 택시회사로 형사를 급파했다.
그렇게 경찰은 송 씨 시신 발견 신고 후 12시간 만에 41세 택시 기사 안남기를 자택에서 검거했다.
◇ 시신 싣고 태연히 택시 영업…꿈에도 모른 채 오르내린 승객들
안남기는 자신이 잡힐 것을 예상했는지 집으로 찾아온 형사를 보고 반항 없이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안남기의 택시 트렁크에서는 송 씨의 혈흔이 나왔다.
안남기는 청 테이프로 송 씨를 질식사 시킨 뒤 송 씨의 시신을 트렁크에 실어 두고 집에서 잠을 잤다. 이후 27일 오후 2시부터는 평상시처럼 태연히 택시 영업을 했다. 이날 오후 11시까지 안남기의 택시에 탄 손님들은 트렁크에 시신이 있는지 꿈에도 모른 채 택시를 타고 내렸다.
◇ "살인 의도 無" 뻔뻔한 변명…1심 사형 나왔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
안남기의 피해자들은 모두 성폭행당한 뒤 테이프에 칭칭 감겨 비구폐색(鼻口閉塞) 질식사했다. 그러나 안남기는 피해자가 숨 쉴 수 있게 테이프를 찢어줬다며 살인의 의도가 없었다고 강도살인이 아닌 강도치사죄를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안남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안남기의 호소가 통했다. 안남기는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현재 14년째 복역 중이다.
◇ 첫 살인 전 이미 성폭행 미수범…여죄 더 있을 것으로 추정
사실 안남기는 첫 살인을 저지르기 4년 전인 2000년에도 여성 승객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쳐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2003년 6월 30일 출소한 안남기는 이듬해 첫 피해자 전 씨를 살해했다.
그렇다면 2004~2010년 사이 살해된 3명의 여성 이외에 안남기의 또 다른 피해자는 없었을까. 아직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안남기의 또 다른 살인으로 의심되는 사건들은 여럿 있다.
2005년 2월 18일 충남에서 모임을 마친 뒤 버스정류장에서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여성과 2009년 9월 8일 청주의 통행량 적은 한 도롯가 트럭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여성 미용 강사 등이 안남기의 피해자로 추정되고 있다.
syk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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