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얘기에 '연락 두절' 아빠…엄마는 24시간 '아들 혈당'과 사투

[4.5만명의 전쟁]①'1형당뇨 8살' 아들 홀로 키우는 기초수급자 싱글맘
한 달 생계비 60만원이지만 의료비 30만원 넘어…"가족은 세 번 죽는다"

편집자주 ...건보 통계상 우리나라 1형 당뇨 유병인구는 4.5만명입니다. 체내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생기는 1형 당뇨는 아직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완치가 안 되는 질병입니다. 은 병과 생활고, 무관심 속에서 이중·삼중으로 전쟁을 치르는 1형 당뇨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박혜연 장성희 김민수 기자 = "삐빅-삐빅-"

아침 7시30분 알람이 울리면 전북 전주에 사는 이은희씨(가명·여·41)의 하루가 시작된다. 전날 새벽 4시까지 1형당뇨인 아들 주형이(가명·8)의 혈당 수치를 계속 확인했던 이씨다. 잠이 부족하지만 익숙해진 지 오래다.

이씨는 기초생활수급자다. 홀로 주형이를 키우는 한부모가정 엄마이기도 하다. 남편은 주형이가 1형당뇨 진단을 받자 가출했다. 코로나19로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빚이 늘어나면서 가정 불화가 심해지던 중이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이씨는 남편과 이혼했다.

하루 24시간 주형이의 혈당 관리를 책임지는 사람은 이씨가 유일하다. 친정 식구들은 저혈당 쇼크에 빠진 주형이를 한번 목격한 후 "무섭다"며 주형이를 돌보는 일을 꺼렸다. 전남편은 양육비 얘기만 꺼내면 연락이 두절되곤 한다.

◇24시간 아이 곁을 떠날 수 없는 엄마, 생활고에도 일하는 건 '불가능'

오전 8시, 이씨가 주형이를 깨운다. 스마트폰과 연동된 연속혈당측정기로 한 번 혈당을 확인하고 채혈침으로 다시 한 번 혈당을 검사한다. 연속혈당측정기는 편리하지만 오차가 있어 채혈침으로 또 검사해야 한다.

8시30분, 이씨는 아침을 먹은 아들과 함께 밖을 나서 학교로 향한다. 주형이가 학교에 도착했지만 이씨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학교 도서관 등 인근에서 '대기'해야 한다. 이씨는 지난 1년 동안 주형이와 함께 등교하고 인공위성처럼 학교 주위를 맴돌았다. 주형이에게 이상징후가 생기면 바로 달려가야 해서다.

1형당뇨 환아는 췌장에서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외부 자극으로 혈당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혈당이 떨어지면 간식을 조금 먹게 하고, 혈당이 올라가면 몸에 연결된 펌프를 통해 인슐린을 주입하는 식이다.

생활고를 겪는 이씨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잠시라도 한눈판 사이 혈당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거나 떨어지면 주형이가 위험해진다.

이은희씨(가명)가 아들 주형이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이씨는 실시간으로 주형이의 혈당 추이를 지켜보며 필요할 때마다 간식을 먹으라고 주지시킨다. (이은희씨 제공) / 뉴스1 ⓒ News1

"아들, 엄마 잠깐 옷 갈아입고 나올 테니까 밥 먹고 있어. 알았지?"

2022년 5월, 평소처럼 인슐린을 주입하고 아이를 다독인 후였다. 외출 준비를 하는데 부엌에서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방을 나가 보니 아이가 쓰러진 채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저혈당 쇼크였다.

이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흐른다. 당시 주형이의 나이는 6살이었다. 1형당뇨 진단을 받은 지 몇 달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주형이는 병원으로 옮겨진 후에도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씨는 "그런 일을 겪고 나니까 그냥 아이가 옆에서 '엄마'라고 불러주는 그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더라"며 울먹였다.

주형이가 정신을 차려 안심한 것도 잠시, 또 한 번 이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형이가 두번째 쇼크를 일으킨 것이다. 첫번째 쇼크를 겪은 지 석 달이 채 지나기도 전이었다. 이번에는 친정 식구가 모두 모인 자리였다. 사촌들과 노느라 밥상 앞에서 산만해진 아이는 의식을 서서히 놓기 시작했다.

이씨는 급히 아들을 깨워가며 주스와 콜라를 먹이고 응급차 안에서도 계속 간식을 먹였다. 다행히 주형이는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고 당일 퇴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씨는 여전히 조마조마하다. 두 번의 쇼크는 이씨에게 상흔처럼 남았다. 이후 이씨의 일상은 주형이의 혈당 관리에 매몰됐다.

이은희씨(가명)가 아들 주형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은희씨 제공) / 뉴스1 ⓒ News1

◇소득 국가지원 60만원이 전부, 의료비 지출만 30만원

이씨가 긴급 생계급여와 주거급여, 아동수당 등으로 받는 돈은 한 달에 약 60만원이다. 그마저도 작년 10월 겨우 받기 시작했다. 남편과 이혼하기 전까지 발생한 사업소득 때문에 지난 1년간 아무 소득이 없었는데도 생계비 지원 대상에서 배제됐다.

그러다 의료보험료가 연체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건강보험공단이 뒤늦게 이씨의 사정을 알게 됐다. 연락을 받은 구청은 이씨를 수급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규정상 수급자 자격을 유지하려면 자활 근로나 취업 활동을 해야 한다. 주형이 걱정에 일할 수 없는 이씨는 "언제 지원이 끊길지 불안하고 막막한 상황"이라며 초조해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근로능력이 있어도 가구원의 양육·간병 등 사유로 근로가 곤란한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근로무능력자로 간주될 수 있다. 다만 미취학자녀가 있거나 치매·장애·질병 등으로 거동이 곤란한 가구원이 있을 경우만 해당된다. 이씨는 주형이가 초등학생이고, '중증 질병'이 아니라는 이유로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이씨가 주형이의 혈당 관리를 위해 지출하는 의료비는 월 평균 30만원이 넘는다. 석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가는 병원 진료비를 포함해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는 연속혈당측정기 전극(센서), 센서를 몸에 붙이기 위한 반창고, 테이핑, 채혈침 및 검사지, 인슐린 펌프 주삿바늘 등 꼭 필요한 소모성 재료만 최소로 지출하는 데도 이 정도다.

가끔 아이 옷과 생필품을 사다 주는 친정 가족도 빠듯한 형편이라 이들에게 손 벌리기 쉽지 않다. 이씨는 "현 상황에서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되는데 정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우리 아이는 죄진 게 하나도 없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1형 당뇨병(질병코드 E10)으로 진료받은 전체 환자 수는 총 4만5057명이다. 이 가운데 만 19세 이하 소아·청소년 환자 수는 3552명(전체 7.9%)이다. 다만 이는 건강보험을 적용받은 환자 수일 뿐 의료급여(보건복지부)가 적용된 환자는 제외돼 실제 유병인구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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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만 신경쓸 수 없습니다"…사회적 배려 절실

이씨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사회의 무심한 냉대였다. 주형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이씨는 첫 담임 교사에게 상담을 청했다. 아들이 1형 당뇨라 주의 깊은 관리가 필요하다고 부탁했다. "그 아이만 신경 쓸 수 없습니다." 교사의 대답은 이씨를 주저앉혔다. 결국 이씨는 아들의 입학 일주일 만에 전학을 결정했다.

이씨는 "1형당뇨 환자 부모들은 진단받으면서 한 번 죽고 생활고 때문에 또 죽고 사람들의 인식이나 편견 때문에 세 번 죽는다"며 "종일 혈당만 바라보다가 우울해지고 안 좋은 생각도 하는데 제발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주형이는 어땠을까. 주형이는 같은 돌봄 교실을 쓰는 3학년 학생으로부터 '너 혹시 쓰러져? 쓰러지거나 기절해?'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평소 학교 얘기를 잘 하지 않았던 주형이라서 마음이 더 아팠다. 이씨가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말을 해야지 왜 안 하니"라고 묻자 주형이는 "엄마가 속상할까봐 말을 안 했다"고 답했다.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