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없는 사업장 알선···해외는 어떻게 임금체불 대응하나

[이주노동자의 눈물]④ 임금체불 당해도 공적 기관 안 찾는다
노동자 생활보호에 집중한 독일·일본…처벌 강화한 미국·영국

편집자주 ...새해가 되면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활짝 웃는 사진이 언론에 실립니다. 그들은 '다문화'의 상징으로 소개됩니다. 그러나 임금을 받지 못한 이주 노동자들은 남몰래 눈물을 흘립니다. 2023년 기준 한국 이주노동자의 체불임금액 추정치는 1300억원에 달합니다. 은 이주노동자의 임금 체불 실태와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추적했습니다.

25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 전태일 동상 앞에서 이주노동자들이 2021 세계노동절 메이데이를 앞두고 인종차별 중단, 차별금지법 제정, 사업장 이동 자유 보장, 노동허가제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1.4.25/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책임감 없는 알선자'

15년간 이주노동자들이 임금체불 진정과 소송을 도와온 인권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의 대표 김이찬씨가 고용노동부를 지칭한 말이다.

한국 청년들이 거부한 일터인 농업·어업 현장에서 계약서 이외의 일을 한 외국인 노동자가 제대로된 임금을 못 받을 때, 이들을 어떻게 도울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서다.

임금체불 해결을 위한 조정·구제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실질적인 피해 보상을 받지 못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재의무가입으로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간이대지급금을 신청할 수 있지만 농·어업 중 법인이 아니고 상시 근로자수가 5명 미만인 사업은 이를 신청할 자격이 없다.

한국 정부가 알선한 사업장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주노동자들이 임금체불 문제가 생겨도 구제 신청을 원천적으로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뚯이다.

반면 독일과 미국 등 해외 선진국들은 노동분쟁 예방 시스템을 갖춰 임금체불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고 있었다. 또 미국의 경우 기업에 조정관을 파견해 임금체불에 대한 자율적 조정을 강조하는 반면 임금체불을 '절도'로 규정하는 강력한 형사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 "임금체불 노동자 생활보호에 방점"

독일은 임금체불의 원인이 다양하더라도 그 이유에 상응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파산에 의해서는 파산 기금을 신청할 수 있고 비경제적인 이유더라도 실업급여를 통해 생활보장을 받을 수 있다.

근로감독이 중앙정부에 일원화 되어 있는 일본은 예고 없는 사업장 점검을 원칙으로 사전 예방에 집중한다. 매년 임금체불 지도 감독의 결과를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하고 임금체불 노동자가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종합노동상담센터가 촘촘하게 설치돼 있다.

아울러 공인노무사협회를 활용해 노동분쟁에 대한 상담센터를 확대하고, 이런 노동상담센터가 조정기구로 넘어가는 장벽을 낮췄다. 일본은 기업 파산인 경우에만 대지급금을 지급하지만 노재보험기금을 재원으로 하고 있어 노동자들이 받을 실질적 피해 보상의 안정성을 보장한다.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을 당했을 때 국내 공적 기관을 통해 문제를 해소하고자 시도한 계절노동자들이 전체 피해자의 10%도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이 실시한 계절근로자 실태조사에서 60% 이상의 조사대상자는 연장 근무 시 급여를 받았지만 나머지는 받지 않았거나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당사자들은 한국에서 근무하며 다른 사람에게 상담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경우가 67%를 차지했다. 상담 경험이 있는 경우, 전체의 약 7.4%가 고용노동청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상담을 요청했다고 답했다.

애초에 한국의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입국 전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채로 들어온다. 공식적으로 습득하는 정보는 2장짜리 근로계약서가 전부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작업 환경은 어떤지, 숙소 시설은 어떤지, 사업장 규모가 몇 명인지,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업장인지 알 수가 없다.

논란이 되는 기숙사 정보도 고용허가 시 사업주가 제출하는 사진이나 영상 자료도 이주노동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이런 정보 불평등이 입국 후 근로계약 임의 변경을 초래하고 임금체불 발생 가능성을 높이지만 이에 대한 조정과 감시는 부족하다.

2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중회의실에서 열린 '착취와 무권리의 고용허가제를 말한다' 이주노동자 증언대회에서 께오짠티 캄보디아 노동자가 발언하고 있다. 2021.8.22/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 "임금체불은 불법…형사 처벌 강화한 미국·영국"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이주노동자 379명 중 298명(78.6%)은 임금체불의 이유가 회사의 '비경제적' 사정이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그 이유로 '사업주가 법 위반을 알면서도 임금체불(37.6%)'을 하거나, 자신이 '외국인 노동자여서(35.6%)', '상습적인 체불 사업장(34.9%)'이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고기복 모두를위한이주인권문화센터 소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상담을 하다보면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고용주들이 정형화된 주장을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며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의 요구로 월급에 포함했다거나 각종 공제금을 사측이 부담해왔기 때문이 퇴직금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이런 갈등에 있어 미국은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모든 임금체불을 임금절도법을 적용해 민형사상 손해배상과 벌금을 강화했다. 임금체불을 한 기업에 민형사상 벌금 부과와 제품 유통 제한 명령을 둘 수도 있다.

영국도 임금체불에 대한 감독은 국세처에서 관리하며 근로감독관이 확인한 체불금액의 200%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법이 마련돼 있다. 과거에는 근로감독이 아예 없었지만 이민자 확대와 최저임금 문제가 커지면서 임금체불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 것이다.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진정·고소 절차에 들어갔을 때 더 불리한 상황에 처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우선 임금체불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세우는 대책이 사업장 변경인데, 그마저도 변경 사유가 본인 책임이 아닌 것임을 증명해야 가능하고, 농업과 어업 분야의 경우 수기로 노동시간 등을 기록하고 기본적인 노동 질서가 잘 준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노동청 진정과정에서부터 고초를 겪는다.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한국 정부가 독점적으로 알선한 사업장에서 발생한 임금체불에 대해 더 적극적인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이주노동자 사업장에 근로시간 기록의무제도를 도입하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입증책임을 사용자에게 부담시켜야 한다"며 "임금체불 피해 이주노동자가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체류자격도 부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