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 의협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이제 그만둬야 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편집자주 ...중증 응급, 소아, 분만 등 필수 의료가 무너지고 있다. 의사 수 부족이 원인으로 거론되나 의료 현장에서는 보다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수는 의사 배출을 늘리는 것과 함께 '나쁜 의료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때로는 '논쟁적 존재'가 되는 김 교수가 앞으로 '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를 통해 의료계 문제를 진단하며 해법을 제시한다.

사진은 16일 서울 시내 한 대학교 의과대학의 모습. 2023.10.16/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오늘 정부가 전국 40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한 의대 증원 수요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고 한다. 다행이다. 발표가 두 차례나 갑자기 연기되면서, 이번에도 대한의사협회의 반대를 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국민이 많았다.

최근 의대 증원 수요 조사 결과가 3000명에 육박한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여러 의료 단체가 의사협회(의협)를 중심으로 결집해 의대 증원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새로 구성된 의협 협상단은 정부와 첫 회의에서 의대 증원 수요 조사가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며 정부에 객관적인 근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결정하면 우리 의료계도 2020년 이상의 강경 투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의학 분야 학회를 총괄하는 대한의학회까지 나서서 의대 교수들에게 의협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다. 최근 의학회장은 의과대학장 모임에서 “투쟁하지 않고 의권(의사의 권리)을 지켜낼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며 의대 교수들이 의협의 스탠스(입장)를 지지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우리 국민의 80% 가까이가 찬성하는 의대 증원을 의사들은 대체 무슨 근거로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것일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와 여러 연구 결과, 국민이 매일 겪는 소아 진료 대란과 응급실 뺑뺑이, 가파른 의사 소득 증가 등 이 모든 것들이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왜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얼마나 도덕적인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에 의사들의 뜻을 거스르면 2020년처럼 파업하겠다고 정부와 국민을 협박하는 것일까?([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 의사를 부족하지 않게 만드는 의사협회의 마법 참조)

의협은 의대 증원이 필요한 객관적인 근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지만, 객관적인 연구 결과를 제시하면 이해할 만한 근거 없이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의협은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4개 연구를 결과가 제각각이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 4개 연구는 의사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일치된 결론을 내놓았고 부족하다고 예측한 의사 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3개 연구는 2050년에 2만2000명~2만800명, 1개 연구는 2035년에 2만7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 의협은 이들 연구가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에서 이뤄진 연구라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은 기획재정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총리실 산하이고, 서울대 교수들 역시 복지부 입맛에 맞춰 연구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막무가내로 우기기’이다.

의협은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한 의대 증원 수요조사는 객관적이지 않다고 부정하면서, 의협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근거라고 주장한다. 의협 산하 서울시의사회는 지난 11월 6일 77%가 의대 증원에 반대한다는 회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의대 정원 확대가 무너지는 대한민국 의료의 해답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폈다. ‘내로남불’이다.

의협은 ‘의사만’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고장 난 녹음기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의대 증원은 우리나라 의료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필요조건’이고 잘못된 의료체계를 함께 고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의협은 ‘마이동풍’이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 진료대란 같은 문제가 의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료정책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건강보험 수가(진료비)를 올려달라는 이야기 말고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도 않는다. 2009년 흉부외과를 포함한 기피 과목 수가를 30~100% 올려줬지만 이들 과목 의사 부족 문제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애써 눈을 감는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에 치명타를 날린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 문제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대학병원에서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진료하던 의사들이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로 소득이 많이 늘어난 동네 의원으로 대거 빠져나가면서 응급실 뺑뺑이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동네 개원의 수입은 대학병원 교수 월급의 2배 수준까지 늘었다.

의사들은 OECD 국가들에 비해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면 외국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의사가 많은 유럽 국가가 진료 대기 기간이 길다고 주장하지만 이들 나라에서는 진료비 부담이 거의 없어 대기 기간으로 의료 이용을 조절한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OECD 국가 의사들에 비해 외래환자를 많이 본다고 주장하면서 OECD 국가의 외래진료 시간이 우리나라에 비해 3배 더 길다는 점은 애써 외면한다. OECD 국가보다 병상은 3배나 많고, 실손보험 같은 의료제도는 과잉 진료를 부추기고, 의사가 의료행위를 독점해 OECD 국가들에 비해 훨씬 더 의사가 많이 필요한 나라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의협은 객관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 믿을 수 없다고 하고, 의대 증원 수요조사를 하면 객관적이지 않다고 하면서 자기 회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의대 증원을 반대한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의사를 늘리면서 잘못된 정책을 고치겠다고 하는데 ‘의사만’ 늘려봐야 소용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정책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정책을 고쳐야 한다는 대안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건강보험 수가만 올려달라고 한다. OECD 국가들에 비해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면 외국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우리나라가 OECD 국가들보다 훨씬 더 의사가 많이 필요한 의료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반대를 위한 반대다.

지금 의대 증원에 실패하고 잘못된 의료체계를 고쳐나가지 않으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 진료 대란으로 고통받고,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 나갈지 모른다. 지금부터 잘못된 의료체계를 고쳐나가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국민들은 의료비 때문에 가계가 파탄 나고, 기업은 공장을 외국에 짓게 될 것이다. 이번에 의대 정원을 늘리지 못하면 다음번에는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한 논의를 3000명에서 시작하게 될 것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