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 40만톤 저장" 순항하는 대심도터널…이상기후 해법 될까

이수~과천 복합터널, 강남·광화문·도림천 빗물터널 착공 앞둬
전문가들 "이상기후 유일한 대안이지만 재난 대응 본질은 사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23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 대심도 빗물터널(저류배수시설)을 찾아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서울=뉴스1) 박우영 기자 = 정부·서울시와 전문가 등이 수해 대책으로 강조하는 대심도 터널(빗물저류터널)이 순항하며 서울 곳곳에서 건설을 앞두고 있다. 기술적으로 유력한 해법이라는 기대와 '터널 만능주의'가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된다.

3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국내 처음으로 도로터널과 빗물배수터널을 한데 짓는 '이수~과천 복합터널'이 지난달 19일 기획재정부 민간투자사업심의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터널 착공까지는 실시협약과 실시설계 등의 절차만 남았다. 터널을 2025년 상반기 착공해 2030년 개통한다는 게 서울시 목표다.

이수~과천 복합터널은 교통 정체와 침수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난 2017년부터 추진됐다. 서울 동작구 이수교차로에서 경기 과천시 과천대로로 이어지는 5.61㎞ 왕복 4차로 도로 터널과 3.3㎞ 길이의 빗물터널을 함께 짓는 프로젝트다. 빗물터널에는 한번에 40만톤이 넘는 빗물을 저장할 수 있다.

서울시는 사당·이수 등 동작구 지역이 수해에 취약하다는 점과 동작대로의 차량 정체가 심하다는 점에 착안해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수방 능력을 키우기 위해 빗물터널 저류용량을 당초 우선협상대상자가 제안했던 31만7000㎥보다 33.7%(10만7000㎥) 키워 42만4000㎥로 상향했다.

이수~과천 복합터널 위치도. (서울시 제공)

이수~과천 복합터널과 함께 서울시가 지난해 수해 이후 추진해온 강남역, 광화문, 도림천 3곳의 대심도 빗물터널도 내년 상반기 착공을 앞두고 있다. 대심도 빗물터널은 이수~과천 복합터널처럼 호우 때 빗물을 보관했다가 하천으로 빗물을 방류할 수 있는 대규모 시설이다.

지난해 8월 동작구에 '기상관측 이래 최대 폭우'인 시간당 140㎜의 비가 내리는 등 이상기후가 이어지면서 이 같은 대용량 빗물저류시설이 호우 대응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앞서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직후부터 대심도 빗물터널 추진 의지를 밝혀왔다. 그러나 후임 박원순 시장 때 환경 파괴 우려 등을 이유로 계획이 변경되면서 오 시장이 밝혔던 7곳 가운데 양천구 신월 터널만 건설됐다.

지난해 수해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신월 터널을 찾아 "침수 우려가 큰 강남역, 광화문, 도림천 일대에 우선 신월동(대심도 빗물터널)과 유사한 시설이 설치될 수 있도록 기획재정부와 환경부가 서울시를 재정·행정적으로 적극 지원하라"고 지시하면서 대심도 터널이 국가 사업으로 확장됐다.

실제 2020년 완공된 신월 대심도 빗물터널의 수해 방지 효과가 상당하다는 데 대부분 전문가가 동의한다. 신월동은 지난해 집중호우에도 침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신월 터널이 없었다면 지난해 호우 때 약 600세대가 침수됐을 것으로 서울시는 추산했다.

전문가들도 대심도 빗물터널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대심도 터널이) 이상기후에 유일한 대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참삼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는 "(대심도 터널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특히 강남역 같은 곳은 그간 유역 변경 등 다른 방법을 총동원했지만 이상기후에 당해내지 못하고 있어 딱히 다른 방법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대심도 터널을 비롯한 '시설' 개선이 재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며 여기에 과도한 환상이 씌워져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인명 피해 예방을 재난 대응의 제일 목표로 본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지자체장 등 사람이 각자의 위치에서 법적으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며 "대심도 터널 등 시설은 위험에 처한 이들을 제때 대피시킨 다음에 보완적으로 작동하는 것일 뿐 그 자체로 인명 피해를 예방하는 해법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자체장 등의 역할을 명시한 재난안전기본법이 제정 20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아무도 법을 지키지 않은 뒤 대심도 터널 등 장비가 부족했다는 식으로 사고 뒤의 논의가 흘러간다"며 "시설과 장비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 재난 대응의 본질이 흐려진다"고 경고했다.

조원철 교수도 "대심도 터널을 건설하더라도 결국 물을 넣고 빼는 타이밍 등 실제 조작은 인간이 경험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며 "잘못하면 오히려 큰 사고가 날 수 있어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고 '대심도 터널 만능주의'를 경계했다.

alicemunr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