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사망자 32명 중 14명 논밭에서 쓰러졌다…26명은 60세 이상

[소리없는 화마 폭염] ③계절적 문제 아닌 사회적 재난
야외노동자·고령층 주 타깃…수해·산불 피해보다 많아

편집자주 ...2023년 대한민국에는 5년 만에 다시 최악의 폭염이 찾아왔습니다. 현재까지 질병관리청 기준으로만 32명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했고, 이는 올해 최악으로 기록될 경북 예천 폭우에 따른 희생자보다 두 배나 많은 수치입니다. 뉴스1은 폭염으로 누가 희생을 당하고, 이를 예방해야 할 관계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더 심해질 폭염에 대한 대책은 무엇일지 4편의 기획물에 담았습니다.

전국 대부분 폭염경보가 발효된 지난 7월 오전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일대 아파트 신축 건설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박상휘 박동해 박혜연 기자 = "폭염으로 인한 사망은 개인의 책임이 아닙니다."

국내에서 폭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에 대해 연구해 온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우리가 흔히 재난으로 인지하는 수해나 산불로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듯 폭염 역시 계절적인 문제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심지어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지진이나 산불, 태풍으로 인해 피해보다 훨씬 많다. 폭염을 사회적 재난이라고 규정한 만큼 국가와 관계당국의 더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한 이유다.

더욱이 폭염은 사회적 약자에 더 가혹하다. 지난 6월19일 경기 하남시의 대형마트 1층 주차장에서 김동호씨(29)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뒤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 온열질환자 10명 중 3명 이상은 야외 작업장에서 발생

김씨만이 아니다. 지난 7월 서울지역 건설노동자 A씨는 작업장에서 일하는 도중 쓰러졌다. 열사병으로 추정됐는데 병원에 들렀다 귀가했지만 결국 다시 쓰러졌다. 급성 뇌경색으로 밝혀진 A씨는 아내와 딸도 알아보지 못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도 벌써 2802명(17일 기준)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는데 건축 현장 등을 포함한 야외 작업장에서 발생한 환자가 908명(32.4%)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건설노조가 현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현장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건설노조가 7월31일부터 8월1일까지 실시한 폭염기 건설 현장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설문 응답자 4명 중 1명꼴인 604명(24.9%)은 휴게공간 없이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명 중 1명(20.3%·493명)은 작업장에서 시원한 물 한 모금 제공받지 못했다.

폭염기 작업 시 4명 중 3명은(74%·2372명)은 어지러움을 느낀다고 답했고, 두통(37.9%,·1214명) 메스꺼움(35.2%·1130명) 근육경련(32.1%·1030명) 순으로 증상을 느꼈다고 했다.

자세히 살펴봐야 할 대목은 폭염 시 작업중단 여부다. 폭염으로 작업이 중단된 사례를 묻자 응답자 2424명 중 1981명(81.7%)이 "중단 없이 일한다"고 답했다. 폭염으로 작업을 중단했다는 답은 443명(18.3%)에 불과했다.

올해는 20대 근로자가 작업 중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은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 역시 '권고'에 불과해 무시되기 일쑤다.

지난달 2일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 대책을 촉구한 건설노조는 휴식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6년 차 철근노동자 장석문씨는 당시 "열사병으로 언론에 나오는 경우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현장에선 노동자들이 일사병과 열사병으로 병원에 매일같이 실려 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창삼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는 "아파트 공사는 특정일까지 준공해야 한다고 정하면 무리하게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며 "폭염 일수가 증가하면 증가한 만큼 준공일을 미룬다든가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 올해만 14명이 논밭에서 사망했다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 사망은 일용직 노동자 등 저소득층과 고령인구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재난에 가깝다.

질병관리청이 올해 온열질환으로 숨진 사망자 32명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14명이 논밭에서 사망했다. 특히 사망자 가운데 26명이 60세 이상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사망자의 상당수가 노인, 사망장소가 논밭이라는 점은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노인층은 빈곤율이 높고 만성질환을 앓는 경우도 많아 폭염에 가장 취약한 계층인데, 이들이 무더위에도 작업을 하는 이유는 생계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29일 충남 서천군에서 밭일을 하다 쓰러진 조모씨(92)도 이 같은 경우다. 뉴스1이 만난 조씨의 유족과 이웃은 조씨가 고령의 나이에도 밭일을 계속해왔다고 한다.

이들에 따르면 조씨는 70년 동안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으며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몸이 아픈 아들과 함께 살았다. 조씨는 골다공증을 앓고 있었고 허리가 좋지 않아 입원을 한 전력도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가에서 제공하는 대책은 무력하다. 여름철에 운영하는 쉼터는 취약계층이 찾기에는 너무 멀거나 어딘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기본적으로 이동권의 문제가 있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쉼터까지 찾아가라는 발상 자체가 탁상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더욱이 당국의 행정력은 도시가 아닌 시골로 갈수록 더 떨어진다. 폭염으로 외출을 자제하라는 재난 문자도 공허하다. 서천군에서 사망한 조씨도 평소 휴대폰을 잘 사용하지 않았고 안내문자가 왔어도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웃들은 말했다.

경기 광명시 코스트코 광명점 본사 앞에서 지난 8월2일 열린 코스트코 카트 노동자 사망사고 관련 추모집회에서 집회 참석자들이 코스트코 대표의 사과와 정규인력 충원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 폭염에는 쉴 권리 제도화해야

산업안전보건법에는 근로자가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해 열사병 등의 우려가 있는 경우 적절히 휴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적절한 휴식의 기준이 없어 현장에서는 아무런 법적 장치가 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라인' 역시 마찬가지다. 가이드라인에는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이면 시간당 10분, 35도 이상이면 15분씩 쉬도록 하라고 하지만 이 역시 '권고'에 불과하다.

실제로 지난 6월 사망한 대형마트에서 사망한 김동호씨의 경우 3시간에 단 15분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휴게시설이 설치돼 있었지만 그마저도 너무 멀어 뜨거운 주차장에서 휴식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같은 비극을 막을 법안들이 모두 국회에서 계류돼 낮잠만 자고 있다는 점이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 등은 '폭염 발생 시 지자체장이 사업주에게 작업중지 명령', '작업중지에 따른 임금 감소분을 정부가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황승식 교수는 제도 마련을 넘어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는 "7월 말 8월 초 2주 정도는 사회에 필수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들을 제외하고 사회가 셧다운을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사망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기간에 정부가 나서 시민들의 사회활동을 최소화해 사망자 발생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 기자)

sanghw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