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열질환 추정 사망자 '0'에 가려진 죽음 176명

[소리없는 화마 폭염] ①사회적 관심 줄자 사망자 급증
공식 사망자가 남긴 3가지 코드는…고령·저학력·무직

편집자주 ...2023년 대한민국에는 5년 만에 다시 최악의 폭염이 찾아왔습니다. 현재까지 질병관리청 기준으로만 32명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했고, 이는 올해 최악으로 기록될 경북 예천 폭우에 따른 희생자보다 두 배나 많은 수치입니다. 뉴스1은 폭염으로 누가 희생을 당하고, 이를 예방해야 할 관계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더 심해질 폭염에 대한 대책은 무엇일지 4편의 기획물에 담았습니다.

지난달 2일 오전 경기 광명시 코스트코 광명점 본사 앞에 코스트코 카트 노동자 사망사고 관련 추모집회 참석자들이 헌화를 마친 카트가 놓여 있다. 2023.8.2/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박상휘 박혜연 기자 = 지난 6월19일 오후 7시쯤 경기 하남시의 대형마트인 코스트코 1층 주차장에서 김동호씨(29)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3분쯤 지나 그를 발견한 동료 직원들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119 구급대가 출동해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동호씨는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2시간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일하던 하남시의 당일 낮 기온은 33도에 육박했으며 이틀째 폭염주의보가 내려져 있었다. 마트 주차장에서 카트 정리 업무를 하던 동호씨는 무더위 속에서 개당 20㎏에 가까운 카트를 최대 20개까지 혼자 날랐다. 유족들은 외부의 온도에 그대로 노출된 주차장에서 동호씨가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6월19일 당일 정부가 운영하는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서 집계된 온열질환 사망 추정자는 '0명'이었다.

질병관리청은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발생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2011년부터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질병청은 전국 500여개의 응급실을 통해 온열질환자 발생 사례를 취합해 매일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동호씨의 사례처럼 매일 발표되는 통계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있었다.

◇ '0'이 됐던 사람들 '176명'

동호씨는 쓰러진 뒤 곧장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응급실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당일 응급실 감시체계에서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동호씨의 사망이 질병청 통계에 누락된 것은 최초 사망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유족들에 의하면 최초 동호씨의 사망 원인은 '폐색전증'이라고만 기록됐다. 단순히 마트에서 일하다가 쓰러져 실려 왔다는 정보만 갖고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유족들이 동호씨의 사망 정황이 담긴 자료들을 제출하고 추가적인 의학적 검증이 이뤄지면서 6월23일 발급된 최종 사망진단서에는 폐색전증을 불러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에 '온열로 인한 과도한 탈수'가 있었다고 적혔다. 이 때문에 당일 온열질환 사망자로 집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질병청의 감시체계는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료진들의 자발적인 보고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감시체계 이외의 의료기관 등을 거치거나 모종의 이유로 보고가 누락되는 경우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온열질환자 보고를 성실히 한다고 하더라도 의료진들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도 전혀 없어 동기를 부여하기도 어렵다.

실제 동호씨처럼 질병청 집계에서 제외됐을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파악해 보기 위해 뉴스1은 통계청 '사망원인통계'를 분석했다. 사망원인통계는 최종적으로 지자체에 제출된 사망신고서를 바탕으로 집계되기에 응급실 감시체계의 한계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 통합서비스에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5년간 사망자 전원에 대한 자료를 내려받아 분석을 실시했다. 2022년과 올해의 경우 아직 통계청 집계가 이뤄지지 않아 자료를 확보할 수 없었다.

5년 치의 자료를 정리한 결과 온열질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5월에서 9월 사이 275명이 온열질환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5년 동안 질병청의 감시체계에 잡힌 사망자는 99명이었다. 최소 176명의 온열질환 사망자가 사망 당일에는 0명으로 기록된 것이다.

연도별로 보면 응급실 감시체계에 집계된 사망자 숫자는 2017년 11명, 2018년 48명, 2019년 11명, 2020년 9명, 2021년 20명이었으나 사망원인통계를 바탕으로 뉴스1이 추려낸 사망자 숫자는 2017년 36명, 2018년 147명, 2019년 26명, 2020년 27명, 2021년 39명이었다. 매해 2~3배 많은 수의 사망자가 확인된 것이다.

물론 통계청의 사망원인통계에도 폭염의 영향으로 사망한 이들의 숫자가 정확하게 잡히는 것은 아니다. 폭염의 간접적인 영향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돼 사망한 이들 등을 더하면 사망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 275명의 죽음이 말하는 코드…'고령, 저학력, 무직'

뉴스1은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사망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사망원인통계 자료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사망원인를 통해 도출한 온열질환자 통계는 더위로 인해 더 피해를 받는 계층이 누구인지도 대략적 유추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사망자의 주된 특성을 보면 '고령, 저학력자, 무직'이라는 키워드가 도출됐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이라고 분류되는 이들이 폭염에도 취약했다.

먼저 사망자 275명 중 60대 이상이 205명(74.55%)으로 사망자가 고령층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고령으로 인해 더위에 대한 면역과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이다.

학력별로 보면 절반 이상인 143명이 초등학교 이하의 최종학력을 갖고 있었고 그중 56명은 '무학'으로 집계됐다. 대학원 이상은 2명뿐이었다.

직업의 경우에도 '학생, 가사, 무직'으로 잡히는 이가 173명(62.91%)으로 가장 많았다. 사망자들의 연령를 고려했을 때 대부분 가사에 종사하거나 무직인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학생 신분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20대의 경우 4명이 '학생, 가사, 무직'으로 포함됐으나 그중 2명은 고등학교가 마지막 학력이었다.

직업별 비율에서 '학생,가사, 무직'의 뒤를 이어 1차 산업종사자인 '농림·어업 숙련 종사자'가 60명(21.82%)으로 집계됐고 단순노무 종사자도 26명(9.45%)이었다. 이외 전문가 직종의 사망자는 1명뿐이었고 관리자급은 1명도 없었다.

폭염이 사회적 취약계층에 더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발표돼 왔다. 한 예로 지난 201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행하는 '보건사회연구'에 게재된 '폭염으로 인한 기후변화 취약계층 사망률변화분석' 연구에 따르면 열지수가 높아질수록 취약계층의 사망률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소득이 없는 노인의 비율, 독거노인의 비율이 높을수록 폭염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 최대 인명피해 재난인 '폭염'…앞으로가 더 문제

폭염은 자연재난 중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발생시키는 재난이다. 행안부가 발행하는 '재해연보' 등을 종합하면 위에 언급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으로 275명이 사망할 동안 호우로는 56명, 태풍으로는 22명이 사망했다. 대설로 인한 인명피해는 해당 기간에 발생하지 않았다.

2018년 기록적인 폭염으로 피해가 누적되자 그해 9월 국회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포함했다. 범정부 차원의 폭염 대책도 매년 발표되고 있다. 정부는 "총력을 다해 폭염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폭염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폭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저조한 것에 대해 연구가들은 이목을 끌만한 시각적 자극이 없고 금전적 피해 또한 불분명하기 때문이라고 꼽는다.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교수는 그의 책 '폭염사회'에서 "폭염은 소리와 형체 없이 다가와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우리는 목숨을 걸고 폭염을 무시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폭염에 의한 건강 피해를 연구해 온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2018년 폭염으로 최대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온열질환 사망이 조명을 받았으나 이후 사망자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자 관심이 사그라졌다고 말했다. 관심이 줄어드는 사이 사망자는 다시 치솟았다. 올해 응급실 감시체계에 잡힌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만 32명으로 2018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황 교수는 "폭염의 경우 위험한 시기가 언제일지 예상할 수 있고 누가 위험한지도 알 수 있다"라며 한국 사회의 수준을 비춰 봤을 때 온열질환 사망자를 '0'으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를 위해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재난 대응·대비 정책을 시행하고 공격적인 홍보를 통해 폭염에 대한 관심을 제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여름철 기온이 높아지고 폭염 기간도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확정적이라는 것이다. 더 강한 폭염이 예고되는 만큼 그에 대한 대비·대응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온열질환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정부는 2020년 '제3차 국가기후변화 적응대책(2021~2025)'을 수립하면서 당시 연간 10.1일이었던 폭염 일수가 21세기 후반에는 35.5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이 문서는 더위가 온열질환뿐만 아니라 감염병과 관련 질환 증가를 야기해 연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사망은 4%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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