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생활기록부 조회 열풍"…"MBTI보다 정확, 선생님 감사합니다"
트위터 등 SNS서 생활기록부 인증 열풍…정부24 홈페이지 한때 접속 장애
"생활기록부 보고 자존감 찾아"…"교사 어려움 이해하게 됐다"는 반응도
- 서상혁 기자, 김형준 기자
(서울=뉴스1) 서상혁 김형준 기자 = "와 이렇게 자세하게 나올 줄 몰랐어요. 제가 초등학생 때는 국어를 정말 좋아했었거든요. 좋아한 만큼, 성적도 잘 나와서 상도 많이 받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제 '리즈 시절(인생의 황금기를 뜻하는 은어)'이었네요."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읽는 내내 대학생 장모씨(24·여)의 입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 "항상 적극적이었고 의사가 명확했다"는 대목에선 연신 "맞아요"라며 감탄사를 내질렀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MBTI보다 선생님의 평가가 더 정확한 것 같네요"라며 웃었다.
생활기록부를 모두 읽은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감사하다"였다. 그는 "마치 잃어버린 기억 조각을 찾은 기분"이라며 "학교 다닐 땐 선생님이 나에 관해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알게 모르게 모든 학생에게 정성을 쏟고 계셨더라"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생활기록부 인증'이 MZ세대의 새로운 유행으로 확산하고 있다. 생활기록부를 발급해 주는 정부24 홈페이지는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을 찾으려는 이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생활기록부에 적힌 '화려한' 과거를 읽으며 일상에서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 수시·하반기 취업 시장 열리면서 유행 시작한 듯…정부24 한때 접속 장애
생활기록부란 초·중·고등학교 학적, 수상 내역, 생활 태도 등 학교생활에 관한 모든 내용이 기록된 문서를 말한다. 담임 교사가 도맡아서 작성한다. 2003년 이후에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이라면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이나 정부24 홈페이지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과거엔 학교 행정실에 직접 방문해야만 조회할 수 있었다.
현재 트위터 등 온라인 커뮤니티엔 생활기록부 인증 사진이 빼곡하게 올라와 있다. "초등학교 생기부(생활기록부)를 보다 회사에서 눈물이 났다" "나도 초등학생 땐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는 글이 수두룩하다. 정부24의 생활기록부 조회 홈페이지는 7일 한때 접속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달 말부터 하반기 취업 시장이 열리면서 한두 명이 SNS에 인증 글을 올린 게 유행의 시작으로 추정된다. 생활기록부는 대학 수시 입학이나 취업 시 제출하기도 한다.
직장인 박모씨(30·남)는 "과거 이맘때 즈음해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위해 생활기록부를 조회한 적이 있었다"며 "최근 SNS에서 생활기록부를 인증하는 게 유행이라길래 다시 조회해 봤는데, 여전히 새롭고 재밌다"고 전했다.
MZ세대가 생활기록부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생활기록부를 열람한 이들 중 상당수는 "자존감이 올라갔다"는 반응을 보였다.
직장인 김모씨(30·여)는 "생활기록부를 보고 내가 과거엔 정말 훌륭한 학생이었고, 소중한 존재였다는 점을 깨달았다"며 "과거를 돌아볼 기회가 돼 기분이 정말 좋았다"고 전했다.
직장인 김모씨(32·여)는 "생활기록부에 담긴 과거의 나를 보고 에너지가 충전됐다"며 "나중에 또 찾아볼 수 있으니, 그때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직장 강모씨(33·남)는 "과거엔 각종 경시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더라"며 "내 인생의 리즈시절을 보는 듯해 생활기록부를 읽는 내내 흐뭇했다"고 말했다.
◇"생기부에서 선생님 정성 느껴"…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 회복' 움직임 동조 반응도
전문가들은 고달픈 현실에서 비롯된 '과거 미화'라고 진단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내가 생각보다는 엉망이 아니었구나' 싶어 SNS에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라며 "학창 시절엔 본인이 별로였다고 생각해도, 누군가 자신을 굉장히 좋게 봤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올라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인이 된 지금은 과거보다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아지고 경쟁도 심해졌다"며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면, 과거를 회상하면서 안락함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생활기록부를 통해 "교사들의 정성과 고충을 느낄 수 있었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서이초 사건 이후 전국의 교사들이 '교권 회복'을 위해 거리에 나서는 상황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이 나왔다.
직장인 최모씨(31·남)는 "생활기록부에 한땀 한땀 적은 글을 보며 선생님들이 나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알게 됐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들은 나를 위해 '바른 인성을 가졌다'며 항상 좋은 이야기만 해주셨다"고 추억했다.
직장인 김모씨(30·여)는 "나도 몰랐던 장점을 선생님이 알아봐 주셨다는 점에 감사함을 느낀다"라며 "요즘 서이초 사건을 비롯해 교육계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많이 들리는데, 마음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
hy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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