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밴드에 심취해 가는 대중...그들은 왜?

인디밴드 '사운드 박스'가 홍대 앞 '놀이터'에서 야외 공연을 하고 있다.© News1

</figure>"인디음악은 장르가 아니에요. '인디'라는 단어는 음악적 요소가 아닌 경제적 요소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인디음악에는 장르적 제한이 없어 더 재미있어요."

주말 밤 홍대 앞 명소로 자리 잡은 '놀이터'를 뜨겁게 만든 인디밴드 '사운드 박스'의 보컬 윤승훈씨(29)가 말하는 인디음악의 정의다.

몇년전부터 인디밴드는 어두운 '지하클럽'에서 벗어나 대중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들은 TV 음악프로그램, 예능프로그램, 인터넷 등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아이돌 음악이 지배하고 있는 대중음악 세계에 등장한 '독특한' 음악들은 대중의 귀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 자신만의 목소리로 대중을 유혹하는 인디밴드

인디밴드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크라잉 넛, 레이지본, 노브레인 등은 '펑크 락'을 중심으로 한 음악이 주를 이루었다. 신나고 경쾌한 리듬 속에 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은 가사로 매니아층을 형성해왔다.

최근들어 장기하와 얼굴들, 10㎝, 옥상달빛 등 인디밴드들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펑크 대신 어쿠스틱한 리듬과 밴드 자신들의 삶을 투영한 가사는 기존의 요란스럽던 '인디'와는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들은 요즘 인디음악에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

대학생 때 인디밴드를 했다는 회사원 김혜림씨(26·여)는 "인디음악은 경제적으로나 대중적으로 독립해 자신들만의 색깔을 뚜렷이 나타내는 음악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또 "최근 10㎝ 등 인디밴드들의 음악은 개성이 뚜렷하다"며 "대중들이 그들의 음악에서 자신의 삶을 비춰볼 수 있어 좋아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인디밴드는 기획사에 소속돼 있지 않아 대중가수보다 음악적 제약을 덜 받는다. 그래서 그들 노래의 가사는 직접적으로 사회에 대한 목소리를 내거나 자신의 철학을 내비치고 있다. 대중음악에 비해 멋부리지 않고 담백한 가사가 더 멋져 보이기도 한다.

10㎝ 노래 '아메리카노'의 가사 '예쁜 여자와 담배피고 차 마실 때, 메뉴판이 복잡해서 못 고를 때, 사글세 내고 돈 없을 때 밥 대신에, 짜장면 먹고 후식으로'는 단순하다.

그러나 대중들은 자신의 일상과 비슷한 가사에 공감했고 10㎝는 이 노래로 TV와 커피CF에 출연하는 등 소위 '스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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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 '전국비둘기연합'이 홍대 클럽에서 공연하고 있다.© News1

</figure>2인조 밴드 '전국비둘기연합'의 김동훈씨(24)는 "인디밴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나만의 철학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노래 'Breathless'도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는 너는 더 많은 것을 원하고, 가진 것 없는 나의 목을 조르고 웃고 있네'라는 가사를 통해 사회 기득권에 대한 불만을 자신의 언어로 토로하고 있다고 한다.

◇ 경제적 독립도 꿈꾸는 인디밴드

인디음악의 ‘인디’는 '인디펜던스(Independence)'를 줄인 말이다. 말 그대로 독립적인 음악을 뜻한다.

이들은 고정관념과 사회통념으로부터 독립해 자신들이 원하는 음악을 한다. 그러나 이들의 '경제적 독립'이 여전히 쉽지만은 않다.

8월15일에는 폐관 위기에 놓인 홍대 인디밴드 공연장 '살롱 바다비'를 살리기 위한 자선공연 '바다비 네버다이(BADABIE NEVER DIE)'가 개최됐다.

살롱 바다비 주인 '우중독보행'(41·예명)이 높은 월세와 지병으로 공연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인디밴드 137개팀이 힘을 모았다.

살롱 바다비는 10㎝, 장재인, 갤럭시 익스프레스 등 수 많은 인디밴드들이 거쳐간 인디밴드의 메카와 같은 곳이다.

홍대 앞은 최근 2~3년동안 면적 3.3㎡(1평)의 평균가격이 4000만원을 넘어섰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진모씨(50)는 "홍대 주변 상권이 커지면서 땅값이 강남 못지않아 소규모 공연장은 줄어들고 대형 클럽들이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살롱 바다비도 100만원이던 월세가 140만원으로 오르면서 운영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다.

홍대 앞 클럽 'Spot'을 운영하는 신명진씨(24)는 "공연장 운영은 이익을 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인디밴드들이 그들의 문화를 키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며 "월세가 부담스러워 문을 닫는 클럽들이 하나 둘 늘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전했다.

그는 "인디음악은 작사·작곡가가 직접 공연하고 그들의 인생관이 담긴 살아있는 음악"이라며 "대중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어 홍대 클럽들도 다시 부흥기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인디밴드 A의 신모씨(25)는 "사실 인디밴드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경제적 빈곤"이라며 "주위에 돈 때문에 음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갈등이 많다."고 호소했다.

'사운드 박스'는 공연수입만으로 밴드운영이 가능한 몇 안되는 인디밴드 중 하나다. 60여명으로 시작했지만 역시 경제적 이유, 음악적 차이 등으로 구성원들이 빠져나가고 지금은 10명만 남아 공연을 하고 있다. 

보컬 윤승훈씨는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며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음악을 꾸준히 하고 관객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공연수익으로 밴드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장기하와 얼굴들, 10㎝ 등 인기 인디밴드 등장은 대중들의 지갑을 열게 하고 있다.

6월 정식 발매된 장기하와 얼굴들 2집은 주요 온라인 판매처인 YES24, 알라딘, 인터넷교보문고 등에서 판매율 1위를 기록했다. 예약 판매만으로도 1차 제작분 1만5000장이 매진돼 발매 첫날 1만장을 추가 제작했다.

10㎝의 신곡 '안아줘요'는 포털사이트 네이버 인기음악 순위에서 9월 현재 11위를 차지하고 있다.

◇ 식상한 대중음악의 대항마로 나선 인디음악

최근에는 TV의 서바이벌프로그램이나 음악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인디밴드들이 알려지고 있다.

KBS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매주 새로운 인디밴드들을 소개하고 있고 '밴드 서바이벌 Top 밴드'는 인디밴드들끼리 경합을 벌이는 서바이벌프로그램이다.

과거 미디어와 인디밴드들이 서로를 멀리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씨는 이런 현상에 대해 "1990년대 이후 대형기획사들을 통해 아이돌들이 지상파 방송을 점령한데 대해 식상함을 느낀 대중들의 욕구가 반영된 현상"이라며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이 인디음악을 접하면서 독특한 음악이라고만 알고 있던 인디음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지산밸리 락 페스티벌, 그랜드민트 페스티벌 등 많은 음악페스티벌 탄생도 인디밴드 대중화를 선도했다고 분석했다. 페스티벌 무대는 주로 인디뮤지션들이 채우고 페스티벌을 함께한 음악 애호가들의 수용층도 더불어 대폭 넓히게 됐다는 것이다. 

현재 인디밴드들 중에는 실용음악을 전공하거나 해외 유명 음대를 졸업한 인재들도 많다. 그러나 국내 주류 음악시장은 이들을 모두 소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홍대 인디밴드 쪽을 선택하면서 인디밴드의 인력 인프라는 풍부해지고 음악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많은 밴드가 주류로 진출하면서 인디밴드를 주류로 나가는 발판으로 삼으려는 인디밴드도 많아지고 있다.

최규성씨는 "처음에는 인디밴드를 주류로 나가는 관문으로 생각하는 밴드들을 탐탁치 않게 여겼는데 최근에는 인디와 주류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수용하는 분위기"라며 "문화의 성숙과 좋은 앨범을 대중들이 지속적으로 수용하면서 인디음악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최근 인디음악에 대한 인기는 음악시장의 다양화를 향하는 흐름"이라며 "기존 대중음악에 지쳐있던 대중들이 주류에 대한 대항마로서 인디음악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탄생한 '올레뮤직 인디어워드'가 주목받고 있다. 이 시상식은 인디음악의 독립적인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탄생됐다. 특히 산업적인 저변 확대와 시스템 구축이라는 발족 취지에 의미가 크다.

인디어워드 자문위원 단장도 맡고 있는 임씨는 "인디 쪽도 격려와 포상이 필요하다"며 "인디어워드가 아직까지 산업기반이 취약한 인디음악에 독립적이고 지속적인 성장동력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디음악은 이제 겨우 출항을 시작한 배와 같다. 인디음악이 대중음악과 경계없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관심과 체계적인 인디산업 육성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인디밴드에 대한 열광은 또 한차례 스쳐지나가는 '소나기'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rje3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