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아픔은 계속 치유 중이죠"…단원고 '닥터' 김은지 원장

참사 그날 학생들의 아픔…이제는 '외상 후 성장'중
"선체 조사, 트라우마 전문가가 현장에서 조율해야"

김은지 마음토닥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전 단원고 스쿨닥터)이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마음토닥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서 환자와 상담을 하고 있다. 2017.4.11/뉴스1 ⓒ News1 오장환 기자

(안산=뉴스1) 박정환 기자 = 2014년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3주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처참했던 그날의 참사는 국민적 아픔으로 그대로 새겨졌다.

그동안 시간은 흘러 바닷속 세월호는 뭍으로 올라왔다. 세월호 참사 당시 생존학생들도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하지만 참사 당시 트라우마는 아직도 세월호 희생자 가족, 교사, 친구들에게 남아 있는 모습이다.

지난 11일 오후 세월호 참사 직후 단원고에서 심리치료를 맡았던 김은지 마음토닥정신과 원장(40)을 만나 그날의 아픔과 현재를 들어봤다.

◇참사 그날 학생들의 아픔…이제는 '외상 후 성장'

"길가에 곱게 핀 벚꽃만 봐도 그날이 떠오를 수 있어요."

김 원장은 세월호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단원고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김 원장은 "흔히 '재경험' 증상이라 하는데 사고 당시가 지금처럼 느껴지는 것"이라며 "뉴스에서 세월호 얘기만 나와도 머릿속에서 그때의 필름들이 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참사 발생 이틀 후인 2014년 4월18일 동료 의사들과 함께 단원고로 향했다. 의사로서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게 무엇일지 고민하다 내린 결정이었다. 그에겐 당시 상황이 아직도 생생하다.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어요. 기자나 외부사람들이 학교에 가득하고 선생님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그때 많은 상담사들이 학생들 심리상담을 했지만 아이들은 불신이 가득했어요. '금방 또 갈 사람들'이라는 생각이었죠."

하루, 이틀로 끝나는 봉사 차원의 심리 치료는 한계가 있었다. 그해 7월 단원고에는 교사와 학생들 마음을 치유하는 '마음건강센터'가 생겼다. 김 원장은 센터에 상주하며 국내 최초로 '스쿨닥터'가 됐다.

학생들은 센터에서 하나둘 마음을 털어놨다. 아픔은 일상과 늘 함께였다. 교과서에서 배 사진만 봐도 당시 생각이 나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친구와 함께 갔던 떡볶이집은 도저히 갈 수 없었다. 급성스트레스, 회피, 악몽, 강박. 그 당시 학생들이 온전히 겪어야 했던 일들이었다.

교사들에게 아픔은 사치였다. 절망에 휩싸인 학교에서, 팽목항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남은 학생들을 돌보고 학부모들과 함께했다. 엄두도 못냈던 교사들의 치료를 그나마 간단하게 할 수 있었던 시기는 참사 후 수개월이 지나서다.

김 원장은 "심리치료라는 말을 감히 건넬 수 없을 정도로 선생님들이 바쁘게 다녔다"며 "그만큼 선생님들의 죄책감이 컸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보상하기 위해서 모든 과정들을 감내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은 흘러 당시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2학년 생존 학생들은 대학생이 됐다. 학생들은 각자 있는 힘껏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김 원장은 설명했다.

그는 "같은 사고를 겪었지만 각자의 꿈이 있고 삶의 방식이 다르다"며 "다만 세월호 이슈가 나왔을 때 공통적으로 겪는 고통이 있고 혹시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세월호 생존자'라는 것으로 주목을 받을까봐 늘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원장에 따르면 많은 학생들은 아픔 이후 더욱 성장하는 '외상 후 성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간호학과, 심리치료학과, 응급의학과, 소방학과 등을 지원해 공부하고 봉사활동에 적극 나서는 학생들도 있다.

김 원장은 "학생들이 아직 아프지만 자신이 극복해낸 것들에 희망을 두고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아이들의 현재 삶은 외상 후 성장을 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지 마음토닥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전 단원고 스쿨닥터)이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마음토닥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4.11/뉴스1 ⓒ News1 오장환 기자

◇"선체 조사, 트라우마 전문가가 직접 현장에서 조율해야"

세월호 선체가 물 위로 떠오를 때 김 원장 역시 복잡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동안 상담했던 학생, 교사, 가족들 등 수많은 얼굴이 스쳐지나가서다.

김 원장은 "인양이 된다는 것은 사실 복잡한 의미를 갖고 있다"며 "이제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이 가득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아이를 이제 정말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수습자 가족들은 사실상 아이들을 애도할 시간도 없이 상실의 시간만을 느껴야 했다"며 "때론 무서운 감정도 느낄 것이고 선체 인양 후 더욱 힘든 감정들을 느낄 것이다. 이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지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으로 본격화될 선체 수색 방식은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김 원장은 강조했다. 앞서 세월호 선체에서는 미수습자로 추정되는 유골이 나왔지만 모두 동물뼈로 판명되면서 가족들의 아픔은 배가 됐다.

김 원장은 "가족들은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야 할 권리가 있지만 빨리 알면 그만큼 정확하기가 어렵고, 판별까지 시간을 또 기다려야 한다"며 "현장에서 이러한 디테일을 잘 맞춰야 한다. 선체 수색을 하는 실무진과 가족들의 요구와 톤을 조율할 수 있는 전문가가 현장에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재난 현장에서 트라우마를 받은 피해자들은 이미 마음이 만신창이인 상태에서 실무진의 태도와 목소리 톤에도 크게 감정이 좌우될 수 있다"며 "트라우마 전문가가 현장에 동석해 윤활유 역할을 해야 되고 조율하면서 천천히, 끈기있게 수색작업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김 원장의 치료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한때 단원고에 상주하던 김 원장은 지난해 6월 마음건강센터 운영이 중단됨에 따라 학교 밖으로 나왔다. 이후 연고도 없는 안산에 병원을 차려 운영하고 있다.

병원에는 소규모의 마음건강센터가 마련됐다. 세월호의 아픔을 끝까지 치유하고 싶다는 김 원장의 의지는 그곳에 그대로 담겼다.

김 원장은 "학교에서 센터를 운영할 때 같이했던 임상심리사 2명과 간호 직원들이 모두 함께 이곳으로 이동했다"며 "10년, 20년이 지나도 그대로 안산에 남아 세월호 때문에 아픈 이들이 언제든지 이곳을 찾을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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