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에 아들 잃고 손목장애 얻은 엄마…法 "후유장애" 인정
4·3사건으로 남편 잃고 끌려가 고문…연행 중 떨어뜨린 아들 숨져
고문당하다 고꾸라져 손목 장애…법원 "상해 경위 구체적·일관돼"
- 서한샘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제주4·3사건으로 갓난아이를 잃고 손목 장애까지 얻은 피해자를 희생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정희)는 A 씨(97)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를 상대로 "희생자 불인정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A 씨의 상해를 4·3사건 후유장애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1947년 결혼한 A 씨는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그해 12월 남편을 4·3사건으로 잃고 몇 달 뒤 자신도 경찰들에게 붙잡혀 인근 산으로 끌려갔다.
연행 과정에서 경찰들이 A 씨를 거세게 밀치는 바람에 A 씨가 안고 있던 아이는 땅에 떨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숨졌다.
경찰들에게 끌려간 A 씨는 두 손이 묶인 채 매질을 당하고 물고문 등에 시달렸다. 그러다 경찰이 묶어놨던 끈을 잘라버리면서 A 씨는 바닥에 고꾸라졌고, 그 순간 왼쪽 손목이 꺾였다고 한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A 씨는 뼈가 잘못 붙어 장애가 생겼다고 주장하며 진상규명위원회에 제주4·3사건 희생자(후유장애인)로 인정해달라는 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진상규명위는 A 씨를 희생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A 씨의 손목 골절이 4·3사건과는 연관이 없는 '노인성 골절'로 판단된다는 이유에서다. 진상규명위는 함께 신고한 A 씨의 아들만 희생자(사망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법원은 진료기록과 진술 등을 바탕으로 A 씨가 입은 상해가 4·3사건으로 인한 후유장애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상해를 입게 된 경위에 관한 A 씨 주장은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된다"며 "친족과 주변 이웃들도 A 씨가 왼쪽 손목에 4개월 동안 보자기를 두르고 다니는 것, 한약방에서 침 맞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또 "진상규명위는 A 씨의 진술 내용을 상당 부분 받아들여 영아를 4·3사건 희생자로 인정했는데 A 씨의 상해 발생 경위에 관해서는 신빙성을 배척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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