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1년…환자 보호냐 사생활 침해냐[세상을 바꿀 법정]

의료계 "기본권 침해" 헌법소원…헌재 1년째 심리 중
수술실 파티, 대리수술 논란에 법 통과…실효성 지적도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인 동시에 나침반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제시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법정에서 나침반의 방향을 돌려놓을 사건들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세상을 바꾼 법정' 시리즈를 통해 과거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대체됐는지를 살펴본 데 이어 '세상을 바꿀 법정' 시리즈를 통해 나침반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짚어봤다.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수술실에 CCTV가 설치돼 있다. (공동취재) 2023.9.25/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이밝음 기자 = 의대 증원 갈등 이전 의료계의 최대 화두는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 논란이었다. 수술실 CCTV 설치는 논의가 시작된 지 7년 만인 2021년 국회 문턱을 넘었다. 2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해부터 시행됐지만, 여전히 헌법재판소는 의료계가 제기한 헌법소원을 심리 중이다.

수술실 CCTV 설치는 대리 수술과 성범죄를 막고 의료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반면 의료계는 의사들이 수술을 꺼리게 되고, 자칫 수술 영상이 유출될 경우 오히려 환자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며 반대했다. 당시에도 의료계 일각에선 총파업에 나서겠단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수술실 생일파티, 대리 수술 논란…7년 만에 의료법 개정

국내 유명 성형외과에서 수술 도중 의료진이 케이크를 놓고 파티를 벌이는 사진이 인터넷 SNS를 통해 공개되며 파장이 일고 있다. (인터넷 SNS 캡쳐) 2014.12.28/뉴스1

수술실에 CCTV 설치 필요성이 제기된 건 2014년부터다. 서울 한 성형외과에서 환자가 누워있는 수술대를 배경으로 의료진이 케이크를 들고 생일파티를 하는 사진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2016년엔 대학생 권대희 씨가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던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조사 결과 담당 의사는 수술을 마무리하지 않고 자리를 떴고 간호조무사 혼자 지혈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외에도 의료기기 영업사원이나 간호조무사가 대리 수술을 진행한 사례가 연이어 드러났다. 대형 병원 인턴이 마취 상태 환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당초 복지부는 자율 설치에 무게를 뒀지만, 국민 80%가 수술실 CCTV 설치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등 여론이 기울자 입장을 바꿨다. 결국 의료법 개정안은 2021년 2년 유예기간을 두고 21대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의료법 제38조의2에서 규정하고 있다. 전신마취 등 의식이 없는 환자를 수술하는 의료기관은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하면 수술 장면을 촬영해야 한다.

다만 응급이나 위험도가 높은 수술을 하는 경우, 전공의 수련을 현저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을 땐 촬영을 거부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뒀다.

의료계 "의료인 직업수행 자유, 인격권 등 기본권 침해"

지난해 9월 이필수 당시 대한의사협회장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개정 의료법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서 및 헌법소원심판청구서 제출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2023.9.5/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의료계는 해당 법안이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방어 진료를 야기한다고 반발했다. 환자들의 민감 정보를 녹화해 사생활 침해가 발생할 수 있고 해킹 위험성도 있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지난해 9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시행을 앞두고 헌법재판소에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서 및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의료인의 직업수행 자유, 인격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일상적으로 침해해 각종 폐해를 야기하고 궁극적으로 환자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환자들도 민감한 정보가 녹화돼 인격권, 사생활 비밀과 자유의 침해가 발생한다"고 했다.

헌재는 현재 의료계가 제기한 헌법소원을 심리 중이다. 다만 최근 의대 증원 갈등으로 논란이 옮겨가면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관심에서 다소 멀어진 상황이다.

환자에게 촬영 안내 의무 없어…실효성 논란도 여전

오히려 현행 규정에 실효성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크다.

우선 환자와 보호자에게 CCTV 촬영 요청 안내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수술실 CCTV 설치는 의무지만, 촬영은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할 경우에만 진행한다. 환자나 보호자가 해당 규정을 모르고 촬영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수술실을 촬영하지 않아도 된다.

처벌 수위가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기관이 수술실 CCTV를 설치하지 않거나, 환자나 보호자의 촬영 요청을 거부할 경우 5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CCTV 영상 보존기간을 현행 30일에서 90일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CCTV 영상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요청하거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요청하는 경우 열람·제공할 수 있다. 기관을 통해 영상을 요청하면 시간이 걸리는 탓에 환자나 보호자들이 한 달 안에 영상을 확보하려고 먼저 형사 고소부터 한다는 것이다.

박호균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변호사는 "중재원 조정 신청은 한 달 이상이 걸린다"며 "고소가 아니라 당시 상황을 알고 싶은 경우도 있는데 법이 오히려 형사 고소를 부추기는 상황이다. 당초 (법 개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대리 수술 등 각종 논란으로 인해 CCTV 설치 의무화가 도입됐는데 여전히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라며 "최근 의료대란으로 인해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지만, 시행 1년이 지난 만큼 평가와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brigh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