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설명으로 발급받은 교통사고 진단서…대법 "상해 증거 안돼"

정지선 넘은 차량, 어린이보호구역 횡단보도 건너던 아동 충격
1심 벌금형→2심 "진단 후 재진 없이 정상등교" 무죄…상고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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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교통사고 후 어린이와 보호자가 병원에서 구두 진단을 통해 상해진단서를 발급받았더라도, 이후 정상 등교가 어려웠거나 병원을 다시 찾아 진단을 받았다는 등의 사정이 없다면 상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어린이보호구역치상)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5일 밝혔다.

A 씨는 2022년 12월 21일 오후 1시 50분쯤 자신의 승용차로 서울 용산구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차량 적색 신호에 정지선을 넘어 주행하던 중 보행자 녹색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B 군을 차량 앞 범퍼 부분으로 충격했다. B 군은 약 2주간 안정을 취하며 치료 경과를 살펴야 하는 상해를 입었다.

사고 당일 정형외과 의사는 B 군과 보호자의 구두설명을 듣고 초음파 검사를 실시, '요추 및 골반의 기타 및 상세불명 부분의 염좌 및 긴장(주상병), 부상병 어깨관절의 염좌 및 긴장상해(부상병)'로 진단하고 진단서를 발급했다.

1심은 A 씨에게 벌금 400만 원을 선고했다. 차량이 B 군의 몸이 부딪쳐 흔들리는 모습 등이 폐쇄회로(CC)TV 영상에 담긴 점, B 군이 만 9세의 어린아이로 성인과 달리 작은 힘에도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점, 사고 직후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아 의사로부터 진단을 받은 점 등을 근거로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피고인이 과실을 인정하면서 후회하며 반성하고 있다"며 "사고 직후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최소한의 조치는 한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가 입은 상해의 정도가 비교적 경미하며, 보험금 지급에 따라 피해 회복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2심은 "피해자가 피고인이 운전하는 차량과의 충돌로 인해 신체의 완전성이 훼손되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가 초래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B 군 아버지의 진술에 따라 발급된 상해진단서의 내용이 최종 판단이 아닌 임상적 추정으로 보이고, 어깨 관절 부위는 교통사고와 직접 연관이 있는 부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B 군 아버지의 진술서와 의사의 사실조회 회신 등에 따르면, B 군 아버지는 '사고 당시 B 군이 사고 사실을 알리면서 딱히 아프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엑스레이는 당연히 찍어서 확인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외관상 멍이 들거나 붓는 모습도 관찰되지 않았지만 B 군은 정형외과에서 차량과 접촉한 허리 아래뿐만 아니라 좌측 허리와 목, 어깨 부위에도 통증을 느낀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CCTV 영상에 B 군이 넘어지지 않고 뒤돌아 인도로 걸어가는 모습이 담겼고, B 군이 진단을 받은 뒤 의료기관을 방문하지도 않았으며, 사고 이후로도 학교에 결석하지 않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도 감안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mau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