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 차명유산 놓고 누나와 '소송전' 태광 이호진, 2심도 승소

故이임용 회장, "아들·아내만 상속…나머지 재산, 집행자 뜻 따라"
檢 수사로 수백억원 차명채권 드러나…"상속회복 기간 10년 지나"

횡령·배임 의혹을 받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16일 오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4.5.16/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노선웅 기자 =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선친의 수백억 원대 차명 유산의 소유권을 놓고 벌인 누나 이재훈 씨와의 소송에서 또다시 승소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6-3부(부장판사 이경훈 김제욱 강경표)는 이 전 회장이 재훈 씨를 상대로 선친의 수백억원대 차명 채권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이재훈씨는 이 전 회장에게 153억5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지난 14일 판결했다.

1996년 태광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임용 선대 회장은 '딸들에게는 별도의 상속 없이 아내와 아들에게만 재산을 주되, '나머지 재산'이 있으면 유언집행자인 이기화 사장 뜻에 따라 처리하라'는 유언을 남긴 채 사망했다.

그런데 2010년 검찰 수사를 통해 수 백억원대 차명 채권 등 이 선대회장의 재산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상속 재산을 둘러싼 다툼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차명 채권이 재훈 씨에게 전달되자, 이 전 회장은 자신이 단독 상속자이며 누나에게 잠시 위탁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반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재훈 씨는 유언 자체가 무효라고 맞서면서 소송이 시작됐다.

2심은 "나머지 재산에 관한 유언이 무효더라도 이 전 회장은 상속 채권을 단독으로 점유해 온 '참칭 상속인(법률상 상속권이 없는 상속인)'"이라며 "재훈 씨의 상속회복 청구권이 침해행위가 있는 날로부터 10년이 지나 소멸했으므로 이 전 회장은 상속 채권을 적법하게 취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증의 상대방을 특정하지 않았단 이유만으로 유언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은 유언자 의사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해 부당하다"며 "오히려 선친은 향후 이 전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이양받아 행사함을 전제로 경영에 불협화음이 없도록 유증 상대방을 한정하고, 재훈 씨를 비롯한 세 명의 딸은 제외하는 것으로 정하는 의사가 있었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또 "선친의 배우자도 선친 사망 전 '그룹 경영은 이 전 회장이 맡아야 하고 이를 위해 차명재산을 이 전 회장이 상속받도록 지정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을 종합하면 유언의 나머지 재산 부분은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다만 배상 판결액은 1심에서 인정한 400억 원보다는 크게 줄었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2011년 제출한 상속세 수정신고에 의하면 차명 채권의 전체 액수는 400억 원을 넘어 730억 원대에 달한다면서도, 이 전 회장이 이미 상속 채권 중 상당 부분을 처분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전 회장이 국세청 조사에서도 보유한 차명 채권 액수를 다르게 말하는 등 여러 정황을 비춰볼 때 소유했다는 차명 채권의 액수가 400억원 이상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에 특정된 전체 차명 채권액 301억4700여만 원 중 재훈 씨가 상환받은 153억5000만 원에 대해서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1심은 재훈 씨로 하여금 이 전 회장에게 400억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유언 중 나머지 재산 부분에 대해서는 무효라며 "상속 개시 당시 원고는 단독으로 상속받을 권리는 없었다"고 봤다.

다만 "재훈 씨는 제척기간 내에 소를 제기하지 않아 이 전 회장이 단독 상속인으로서 온전한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판단했다.

buen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