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고문 기술자' 고병천, 국가에 1억8870만원 물어내야"

법원 "지휘권 행사할 수 있는 지위…고문 수동적 가담 아냐"
고병천·정부 쌍방 항소…정부, 이근안 상대 구상금 소송도 승소

서울중앙지방법원. /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군사독재 시기 '고문 기술자' 고병천 전 국군 보안사령부 수사관이 국가에 구상금으로 1억 8870만여 원을 물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부장판사 김도균)는 지난 5월 "고 씨는 국가에 1억 8870만여 원과 지연 손해금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국가가 청구한 3억 7741만여 원 가운데 절반가량을 인용했다.

이번 구상금 소송은 '재일교포 간첩 조작' 피해자 윤정헌 씨 사건과 관련돼 있다.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교포로서 유학을 와 고려대 의대에 다니던 윤 씨는 1984년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로 보안사에 돌연 체포됐다.

수사관들에게 고문·가혹행위를 당한 윤 씨는 허위자백 해 체포된 지 1년 만에 징역 7년·자격정지 7년 형이 확정됐다.

이후 고문에 의한 조작 사건이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윤 씨는 2011년에 이르러서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어 윤 씨 측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국가가 윤 씨 측에 12억 3780만여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정부는 배상금 일부를 고 씨가 부담해야 한다며 구상금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고 씨가 가혹행위 등 위법행위를 적극 주도했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단에는 고 씨가 윤 씨의 재심 재판에서 "가혹행위를 한 일이 없다"고 위증했다가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은 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보고서 등이 주요 근거로 쓰였다.

재판부는 "계장을 제외하면 고 씨가 가장 높은 상급자였으므로 수사관들에게 어느 정도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라며 "재일교포 간첩 검거를 주도한 공적을 인정받아 포상받기도 한 만큼 단순히 상부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가혹행위에 가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가와 고 씨는 모두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 7월에도 국가가 또 다른 '고문 기술자'인 전직 경찰관 이근안을 상대로 낸 구상금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근안 측이 재판 변론에 나서지 않으면서 재판부는 정부가 청구한 33억 6000만 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sae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