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조작' 피해자 유족, 국가·이근안 손배소 승소…"7억 배상해야"

납북 어부 고문 수사해 허위 자백…부인도 불법구금돼
법원 "국가, 유족에 7억1688만원 배상…이근안도 30%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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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고(故) 박남선 씨 부부의 유족들이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부장판사 손승온)는 유족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유족 5명에게 총 7억 1688만 원을 배상하고, 이 씨는 이중 2억 1506만 원을 공동해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 소속 수사관들은 박 씨 부부에 대한 체포 및 구속 절차에서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구타 및 각종 고문과 협박 등 극심한 가혹행위를 해 허위 자백과 진술을 받아내는 방법으로 증거를 조작해 박 씨를 구속기소했다"며 "검찰 역시 박 씨 등이 수사관들로부터 고문을 당했다고 호소했음에도 이를 묵살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는 박 씨의 석방 이후에도 박 씨는 물론 가족들까지 간첩의 가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불이익을 받게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은 일련의 공권력 행사는 국민의 기본권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의무를 위반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므로 국가배상법에 따라 위자료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고문기술자로 알려진 이 씨와 관련해 "이 씨는 악랄하고 가혹한 고문을 진행하고 불법 수사를 주도한 자로서 국가와 공동으로 불법행위를 저질렀고, 이후에도 재심 대상 사건의 공판기일로 출석해 허위 증언을 했다"며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이후에 도서를 발간해 다시금 망인과 원고들에게 2차적인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는 점에서 위법성이 중대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한편으로 이 씨는 당시 경찰로서 상위 수사본부의 지휘에 따라 직무를 수행했을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불법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이 씨에게만 돌일 수 없는 점 등을 참작해 이 씨의 배상책임을 국가의 원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액의 30%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박 씨는 1965년 10월 29일 서해 함박도 인근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중 납북됐다가 그해 11월 22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경찰은 1977년 1월 박 씨를 영장 없이 연행해 약 3개월간 불법으로 구금한 상태에서 고문해 "납북 기간에 북한에 있는 숙부에게 포섭돼 간첩행위를 하고 공작금을 받았다"는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 당시 박 씨는 반복되는 구타와 물고문 등을 견디지 못하고 수사관들이 종이에 써 준 내용을 암기해 진술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박 씨의 부인도 1978년 불법 구금돼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박 씨가 북한 공작원들과 연락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허위자백을 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 씨는 징역 7년 및 자격정지 7년, 박 씨의 부인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및 자격정지 2년이 확정됐다.

박 씨는 1985년 형기 종료로 출소했고 2005년 사망했다. 박 씨의 부인은 2022년 이 소송을 진행하던 중 사망했다. 소송은 자녀들이 이어받았다.

박 씨의 판결은 박 씨 부인의 유죄 판결은 재심을 통해 2021년 모두 무죄가 확정됐다.

한편 이 씨는 2013년 1월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에는 '박 씨가 이북에 있는 숙부로부터 지령을 받고 조개잡이에 사람들을 동원했고 공작금을 받았다고 자백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