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우면 뭐하나, 청년들이 사라진다…"숨 쉴 구멍 필요해"[함께 지키는 생명]②
20대 사망원인 53% '자살'…"코로나19 거치며 심각"
정책 못 따라가는 '예산'도 걸림돌…"컨트롤 타워 신설 필요"
- 윤주현 기자
"미치기 전에 끝났으면 좋겠다"
(서울=뉴스1) 윤주현 기자 = 재수생 A 씨는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스트레스로 자살 소동을 벌인 친구도 있다"며 "어서 빨리 수능이 끝났으면 좋겠다"며 담담하게 고백했다.
이날 대치동에서 만난 다른 청년들의 속사정도 A 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업, 취업난, 주거 문제 등등 이유는 다양했지만 이들 모두 "숨 쉴 구멍이 필요하다"는 생각엔 이견이 없었다.
우리 미래를 책임질 수많은 청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었다. 10대 인구 10만 명당 자살원인 사망자 수는 7.9명으로 전체 10대 사망자의 46.1%에 달했고, 20대 사망자의 반 이상(52.7%)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청소년기의 과도한 사교육부터 취업 전쟁까지 이어지는 '과잉 경쟁'은 젊은 세대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주거난, 취업난 등의 특수적 상황이 겹쳐 젊은 세대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기 어려워졌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젊은이들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저성장 국면을 맞이했다"며 "자신의 노력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젊은 세대들은 우울함과 박탈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여기에 코로나19 시기 사회적 단절은 청년들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사람 간 상호작용이 줄고 개인의 고립이 커져 젊은 세대가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분석이다.
이해우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은 "코로나 19시기를 거치며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들의 사회적 소통이 단절됐고, 젊은 세대들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의 죽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부 기관의 계획과 달리 이를 뒷받침할 예산이 그대로인 탓에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실제 정부는 올해부터 자살예방 교육을 의무화하고 전담인력 역량강화교육 및 강사양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도 예산 주요 사업비 설명자료에 따르면 올해 학생건강지원강화(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 지원) 사업비는 올해 10억 5400만 원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자살예방교육의 경우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대면 교육이 서면으로 대체되거나 인력이 부족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국회 자살예방포럼의 지자체 자살예방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자체 예산 237조 원 중 자살예방 예산은 0.022%에 불과했다.
백종우 교수는 "문제는 제도가 아닌 계획을 실제로 작동시키는 예산이다"며 "젊은 층의 정신 건강을 제대로 돌볼 수 있는 의료, 교육 정책에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예방 교육과 더불어 제대로 된 청년 정신과 치료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홍현주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들을 위한 정신과 병동을 확충하고 청소년의 정신 건강을 돌보는 대안학교를 세우는 방안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백종우 교수는 대만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신건강휴가' 제도를 도입해 경쟁 체제에서 청년들이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나 직장에서 청년들이 자신의 정신 건강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나아가 청년들의 자살 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를 신설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다부처 협력을 위해 총리실 산하에 자살예방 정책위원회가 설치됐고, 지자체마다 자살예방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협력과 규모에 있어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홍현주 교수는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자살 예방정책은 예산 집행이나 정책의 연속성에 있어 한계가 있다"며 "정부 차원의 독립된 기구를 만들어서 자살 예방 문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우 총장 또한 "청년층을 대상으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여러 자살 예방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이를 관리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gerra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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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해 자살 사망자 수는 1만 4000여 명으로 전년 대비 8.3% 증가했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 인원을 나타내는 자살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인 27.3명에 달합니다. 대책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OECD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은 아직도 벗어내지 못했습니다. 에선 국내 자살예방 구조를 분석하고, 필요 과제를 면밀히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