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초격차 만들겠다"…윤 대통령, 한-네덜란드 '반도체 동맹' 일궜다
공동성명에 '반도체 동맹' 명문화…삼성·SK, 노광 1위 ASML 맞손
116년 전 '헤이그 특사' 발자취 따르며 보훈 행보 "열사 정신 가슴에"
- 최동현 기자, 나연준 기자, 정지형 기자
(암스테르담·서울=뉴스1) 최동현 나연준 정지형 기자 = "한국과 네덜란드가 반도체 분야 초격차(超隔差)를 만들어가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반도체 동맹'을 명문화한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밝힌 포부다. 윤 대통령이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계기로 한-네덜란드 반도체 협력을 '동맹'으로 격상하고, 세계 1위 반도체 노광장비 기업인 ASML과 국내 반도체 기업 간 공동사업 계약을 체결하면서 천문학적인 미래이익을 따냈다는 평가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ASML 간 공동사업이 맺어지면서 한국의 반도체 위상을 초격차로 끌어올릴 발판이 마련됐다. ASML은 반도체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2㎚(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최첨단 파운드리 공정의 기술 우위를 차지하면 660조원대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동맹' 명문화…한국에 1조원 R&D센터 짓고 공동 개발
윤 대통령은 13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뤼터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반도체 동맹'을 명문화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성명에는 반도체 외에도 외교안보·친환경 에너지·첨단기술·인적문화교류 등 5대 전략적 협력 원칙이 담겼다. 또 경제안보·공급망·원자력·무탄소에너지(CFE)·정보통신기술(ICT)·국방 협력 관련 6건의 양해각서(MOU)도 체결됐다.
백미는 '반도체 동맹'(Semiconductor Alliance) 구축이다.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양국 간 반도체 인재 공동 육성,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세계 1위 반도체 노광장비 기업 ASML 간 양해각서(MOU) 체결 등 사실상 동맹에 준하는 협력이 추진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동성명에 '동맹'이 명기되면서 양국 협력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반도체 동맹은 양국이 단순한 협력을 강화하는 수준을 넘어 공급망 위기가 발생하면 '반도체 공급망 위기 극복 시나리오'를 즉각 발동·공동 대처하는 관계로 격상됐다는 의미다. 양국은 핵심품목 공급망 협력을 위한 '반도체 대화'와, 격년으로 개최되는 '2+2 외교·산업 장관급 대화체'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ASML과 국내 반도체 제조기업 간 공동 사업을 끌어낸 점도 핵심 성과 중 하나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빌렘 알렉산더 국왕과 ASML 본사를 찾아 '삼성전자-ASML 협력 양해각서'(MOU), 'SK하이닉스-ASML 협력 MOU', '한-네덜란드 정부 간 협력 MOU' 3건을 체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들도 동행했다.
윤 대통령은 뤼터 총리와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반도체 동맹'의 의미에 대해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하고 최첨단 기술을 함께 구축해 나가기 위해 주요 과학기술적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해결하고, 정보를 긴밀하게 공유한다는 뜻"이라며 "한국과 네덜란드의 반도체 동맹의 목표는 세계 최고의 초격차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네덜란드 전방위 협력…윤 "최상의 관계", 뤼터 "전대미문 협력"
윤 대통령은 이번 국빈 방문을 계기로 지난해 체결됐던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프로토콜을 완성했다. 양국이 경제안보·공급망·원자력·무탄소에너지(CFE)·정보통신기술(ICT)·국방·물류·인적교류 등 전방위로 확대·강화하기로 합의하면서 한-네덜란드 우호협력은 윤석열 정부 들어 절정에 달한 분위기다.
윤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취임 후 뤼터 총리와 네 차례 정상회담을 갖는 등 친밀한 관계를 이어왔다면서 "한-네덜란드 관계를 평가하면 지금까지 관계 중에서 가장 최상의 관계"라며 "앞으로 첨단과학기술, 반도체를 바탕으로 안보와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분을 망라해서 양국 관계의 지평이 더 넓어질 것이고, 또 깊어질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뤼터 총리도 한-네덜란드 관계에 대해 "전대미문의 협력 관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좋았던 적이 없었다"고 양국 우호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어 "원예 농업 등 전통적뿐만 아니라 조금 더 광범위한 국방·방위라거나 반도체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양국이 전통적 분야와 첨단 분야를 아우르는 전방위 협력을 강화할 뜻을 역설했다.
양국 정부 및 기업 간에도 원전·첨단산업·무탄소에너지·물류·농업 등에서 총 32건(기업 간 계약 19건)의 사업 계약이 체결됐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네덜란드 정부와 '신규 건설을 위한 기술 타당성 조사 계약'을 맺어 네덜란드 신규 원전 2기 건설 수주 경쟁에 뛰어들고, 부산항만공사와 로테르담항만공사 간 '콜드체인 물류센터 구축을 위한 투자의향서'가 체결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디지털-농업 융합 분야 공동 연구 및 협력 추진을 위한 '디지털 파밍(Farming) MOU △뇌 조직 교환 및 뇌 질환 연구 협력 MOU △워킹홀리데이 연간 참여 인원 2배 확대(100명→200명)등이 체결됐다. 정부는 해당 계약 및 MOU가 구체적인 성과로 조기에 가시화되도록 적극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116년 전 '헤이그 특사' 발자취 따른 윤 대통령 "열사 정신 가슴에 새길 것"
윤 대통령의 '보훈 행보'도 이번 순방의 관전 요소였다. 윤 대통령은 뤼터 총리와 함께 헤이그 리더잘(Ridderzaal)을 방문하고 이준 열사 기념관을 찾았다. 리더잘은 1907년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곳으로, 고종이 '헤이그 특사'(이준·이상설·이위종)를 파견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을사늑약'은 1905년 11월17일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 박탈한 불평등조약이다. 헤이그 특사는 천신만고 끝에 회의장까지 도달했으나, 일제의 끈질긴 방해로 결국 입장하지 못했다. 이준 특사는 회의 참석이 끝내 거부되자 장외 외교투쟁을 벌였고, 그해 7월14일 머물던 드용 호텔에서 순국했다.
윤 대통령이 당초 뤼터 총리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을 바꿔 리더잘을 택했다고 한다. 한국 정상이 리더잘을 찾은 것은 처음으로, 이는 116년 만에 세계 최약소국에서 '글로벌 중추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위상을 알리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이 대통령실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권 회복과 독립을 위해 애쓰신 순국선열들의 희생 덕분에 오늘날의 자유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라며 "자유, 정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신 열사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고 이준 열사의 애국정신과 평화를 향한 숭고한 뜻을 알리는 노력을 정부도 계속 지원해 나가겠다"고 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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