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년 전 문전박대 당한 곳"…윤 대통령 '헤이그 리더잘' 찾는 이유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된 리더잘…윤 대통령, 미술관 취소하고 방문
"국권 뺏겼던 약소국 116년만 눈부신 성장"…'글로벌 중추국가' 알린다
-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국권(國權)을 뺏겨 문전박대를 당했던 그곳을 116년 만에 국빈(國賓) 자격으로 다시 찾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네덜란드 국빈 방문 계기에 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헤이그 리더잘'(Ridderzaal)을 방문한다. 윤 대통령이 일정까지 바꿔가며 리더잘을 찾는 건 100여년 만에 세계 최약소국에서 '글로벌 중추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위상을 알리고 순국선열의 희생을 기리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오는 13일(현지시간) 마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함께 헤이그 빈넨호프에 소재한 리더잘을 방문한다. '기사의 전당'(Hall of Knights)을 뜻하는 리더잘은 1907년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장소로, 당시 고종은 '헤이그 특사'(이준·이상설·이위종)을 파견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했다.
'을사늑약'은 1905년 11월17일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 박탈한 불평등조약이다. 헤이그 특사는 천신만고 끝에 회의장까지 도달했으나, 일제의 끈질긴 방해로 결국 입장하지 못했다. 이준 특사는 만국평회회의 참석이 끝내 거부되자 비분강개하며 장외 외교투쟁을 벌였고, 그해 7월14일 머물던 드용 호텔에서 순국했다.
윤 대통령은 당초 뤼터 총리와 단독 회담을 가진 후 함께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을 찾을 예정이었지만, 순방 직전 이를 취소하고 리더잘로 행선지를 바꿨다. 윤 대통령이 리더잘 회의장을 밟게 된다면, 116년 전 헤이그 특사가 끝내 거부당했던 곳을 우리 정상이 '국빈 자격'으로 방문하게 되는 의미를 갖게 된다.
윤 대통령은 리더잘을 찾아 대한독립에 헌신했던 순국선열의 정신을 기리고, 그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글로벌 중추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위상을 알릴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헤이그에 있는 이준 열사 기념관도 찾을 예정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리더잘은 국권을 뺏긴 대한제국 특사단이 초청장이 없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했던 곳"이라며 "116년이 지나 대한민국 대통령이 네덜란드를 국빈으로 방문하고, 그곳(리더잘)을 찾는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일정을 조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대한민국이 지난 100여년간 이례적으로 빠른 성장을 통해 강대국 반열에 올랐고, 이제는 네덜란드와 '반도체 동맹'을 맺을 만큼 국력과 외교력이 높아졌다"면서 윤 대통령이 순국선열의 희생이 눈부신 성장을 뒷받침했다는 의미를 되새길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윤 대통령은 해외 순방마다 역사적 상징성이 있는 장소를 찾고 있다.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함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일 정상의 한국인 위령비 공동 참배는 역대 처음이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그간 한일 양국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 위주로 해왔다면, 이번에는 실천을 한 것"이라며 "동북아,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핵 위협에 두 정상, 두 나라가 공동으로 동맹국인 미국과 함께 대응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된다"고 밝힌 바 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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