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외압' 수사 속도 내나…'VIP 격노설' 규명은 시간 걸릴 듯

군사법원, 외압 의혹 관련 입장 내놓지 않아
공수처, 1년 넘게 수사 중…'무용론'도 제기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군 검찰이 박정훈 대령에게 적용했던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 판단을 내렸다. 2025.1.9/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군사법원에서 1심 무죄 판결을 받음에 따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해병대원 순직 사고 관련 외압 의혹 수사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공수처 수사에 따라 'VIP 격노설'에 따른 대통령실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도 밝혀질 가능성이 있다.

중앙지역군사법원은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박 대령에 무죄를 선고하며 그동안 박 대령 측과 야권에서 제기해 온 외압 의혹에 대해선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이 박 대령에게 해병대원 사망사건 초동 조사기록의 민간 경찰 이첩을 중단하라고 명령한 데 대해 "정당한 명령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으나, 최초 이첩 보류 지시에 대해선 "정당한 명령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박 대령 측) 주장에 대해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박 대령의 항명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최초 이첩 보류 지시의 정당성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김 전 사령관이 이첩 보류 명령을 개별적·구체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이첩 보류 지시의 정당성 및 이와 관련된 수사 외압 의혹은 공수처에서 진행되는 이 전 장관과 김 전 사령관, 대통령실 관계자 등을 상대로 한 수사에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군 형법상 불법적인 지시는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번 무죄 선고에 따라 박 대령 측이 그동안 무죄 근거로 내세웠던 불법적인 외압 의혹이 힘을 얻은 상태다.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어머니와 대화를 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군 검찰이 박정훈 대령에게 적용했던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 판단을 내렸다. 2025.1.9/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공수처는 지난 2023년 8월 박 대령의 고발을 접수한 이후 2024년 1월 국방부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본격 수사에 나섰다. 이후 2024년 4월부터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김 전 사령관 등을 소환조사했으나, 시작한 지 1년이 넘도록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공수처는 지난해 10월부터 다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이 전 장관 등에 대한 조사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한 '구명 로비' 의혹도 수사하고 있다.

다만 공수처가 현재는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준비에 집중하고 있어 해병대원 사망사건 관련 외압 의혹 수사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공수처는 2021년 설립 이래 직접 기소한 사건이 총 5건에 그쳤고, 현재 수사 인력은 검사 15명과 수사관 36명 등으로 부족해 '무용론'도 나오고 있다.

박 대령 측이 이첩 보류 지시의 시작점이었다고 주장하는 'VIP 격노설'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격노'했다는 당사자인 윤석열 대통령과 이를 직접 들은 것으로 지목되는 이 전 장관이 앞으로도 직접 설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격노설을 전해 들었다는 인물들의 증언만으론 신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전 장관은 박 대령 공판 과정에서 VIP 격노설이 '허위'라고 주장했고, 재판부는 박 대령 측 요청을 받아들여 윤 대통령 측에 이와 관련한 사실조회 신청에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이런 가운데 군 내에선 박 대령 무죄 판결로 '통상적인 상관 지시도 적법한 명령인지를 하나하나 따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게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휘관들도 자신이 적법하게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분명히 인식하기 위해 관련 법령을 다시 살펴보는 분위기다.

hg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