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진전' 있었지만…사도광산에 '강제 노역' 표현 부족하다
日, 전체 역사 반영·매년 추모식 진행키로…박물관 28일부터 전시
전문가들 "강제성 부재 유감…日 약속 이행 여부가 관건"
-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과거 조선인 강제노역이 이뤄진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된 가운데 유산 관련 설명에 '강제'라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정부 대응의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제기된다.
앞서 세계유산위원회(WHC)는 전날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유네스코 전체 회의에서 일본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한국은 당초 일본이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담을 것을 요구했고, 이와 관련해 한일 간 물밑 협의가 진행됐다. 이번 등재 결정은 곧 한일 간 일정한 합의점을 찾았다는 뜻이 된다.
외교부는 한일이 합의에 이르게 된 배경에 대해 일본 측이 광산의 전체 역사'를 현장에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해석과 전시 및 시설을 개발하고 매년 추도식을 실시하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일 간 합의에 따라 전시 시설은 사도광산에서 약 2㎞ 떨어진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 사카시타마치 소재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일부에 마련되며 금일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엔 A~E 등 총 5개의 전시실이 존재하는데, 그중 D 전시실 내 1구획에서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을 주제로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일본 측이 '강제 징용'에 따른 노역이 이뤄진 역사적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가혹한 환경' 등 표현으로 노역의 배경과 환경을 '순화'시켰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도광산 전시 공간에는 일본 측이 작성한 사료를 토대로 조선인들이 위험한 갱도 내부 작업에 투입됐으며 일본인 노동자에 비해 더 가혹한 노동 조건에서 근무했다는 내용만 있을 뿐, 강제성에 대한 언급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가노 다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도 회의 도중 발언에서 강제 노역 문제에 대해선 "1994년 9월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한 국민징용령이 한반도에 도입돼 노동자에 대한 '근무'(task)가 의무화됐고, 이를 위반할 경우 징역형 또는 벌금이 부과됐다"라고만 설명했다.
이러한 세부 내용 때문에 일각에선 한일이 합의한 내용이 2015년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때보다 후퇴했단 비판적 목소리도 내고 있다.
일본 측은 지난 2015년 군함도가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 시설 23곳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던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 노역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 측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조선인 강제 노역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2021년 위원회가 "강력한 유감"의 뜻을 담은 결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도광산 건에 대해서도 강제성이 언급되지 않은데 유감을 표하면서도 향후 일본 측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성의 있게 약속을 이행할지 여부가 더욱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강제성'에 대해서는 한일 양국 간 이견이 큰 사안으로 양측이 동일한 입장을 표명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라면서도 "아쉬운 부분은 있으나, 현장에 기록을 남기고 이를 추모하며 기억하며 후대에 이어가도록 하려는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강제성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상호 인식의 차이를 좁혀 나아가길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 평화연구회 대표도 "조선인 노동자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데 굉장한 유감을 표한다"라면서도 "우리 정부는 2015년 군함도 때 이미 강제성 내용을 짚고 넘어간 만큼 유효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번엔 구체성 측면에서 주력을 한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등재에 대한 평가보다도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개선 방안과 수준이라며 전시가 조선인 노동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일반 시설을 임대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만큼, 지속성 보장을 위해 전담 상설 시설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본 니가타현 소재 사도광산은 에도시대인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전통 수공예 금 생산을 하던 곳으로 메이지 시대 들어 사도광산을 기계화하면서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로 투입됐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지난 2019년 펴낸 사도 광산 강제동원 관련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40년대에 약 1200명의 조선인이 사도광산 광부로 동원됐다. 가족까지 합하면 당시 섬에 있었던 조선인은 1300여 명 정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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