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풍선 양' 배로 늘린 북한…대남 심리전 '효과있다' 판단했나
'남남갈등·행정력 소모·국민 불편'…"김정은 정권 뼈아픈 조치를"
- 박응진 기자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북한이 이달 들어 '오물풍선'을 또다시 남한으로 날려보냈다. 그 양은 지난 달 말에 날린 오물풍선의 3배에 가까운데, 북한은 오물풍선이 대남 심리전에 '효과가 있다'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북한이 "계속계속 주워 담아야 할 것"이라고 위협한 만큼, 지속적인 살포 가능성이 제기된다.
2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일 저녁 8시쯤부터 대남 오물풍선을 부양하기 시작했다. 이날까지 식별된 오물풍선은 약 720개로, 시간당 약 20~50개가 공중 이동해 서울·경기·충청·경북 지역에 낙하했다. 이날 오후 들어선 북한 지역에서 더 이상 부양하는 풍선이 식별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우리 군과 경찰이 서울·경기 등지에서 수거해 합참이 이날 사진으로 공개한 오물풍선의 내용물을 보면 '제비', '려명'이라고 적힌 담배꽁초를 비롯해 폐종이, 천조각, 비닐 등 오물·쓰레기가 대부분이다. 지난 달 28~29일 살포된 대남 오물풍선의 내용물과 유사한 것으로, 안전에 위해되는 물질은 없다는 게 합참의 설명이다.
북한이 지난 달 28일부터 이날까지 살포한 대남 오물풍선은 모두 1000개가 넘는다고 합참은 전했다. 북한은 지난 달 26일 남한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에 '맞대응'을 예고하고 28일 밤부터 29일까지 오물풍선 260여 개를 남쪽으로 날려보낸 바 있다.
북한이 이번에 대남 오물풍선 양을 3배 가까이로 대폭 늘린 건 오물풍선 살포 행위가 남남갈등이나 남한의 행정력 소모 등 목적의 대남 심리전에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당장 정치권에선 우리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달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가진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안보 관점에서 참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에서 오물 풍선을 살포했고 나흘 연속 도발함에도 우리 정부여당이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아무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최고위에서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도발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각에선 우리 군이 북한의 오물풍선과 이날까지 닷새 연속 서해 서북도서를 향해 이뤄지고 있는 북한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전파 교란 공격에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단 볼멘 소리도 나온다.
이 뿐만 아니라 오물풍선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과 소방을 비롯해 화생방과 폭발물처리반 등 군 병력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행정력 소모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물풍선에 매달린 내용물 1개의 무게가 1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현재까지 확인된 1000여 개 오물풍선의 무게만 합쳐도 10톤(t)에 달한다.
오물풍선이 서울·경기 뿐만 아니라 충청·경북 등지에서 전국적으로 발견되면서 우리 국민들이 겪는 불안과 불편도 적지 않다. 오물풍선을 맞은 차량의 앞유리가 깨진 피해 사례도 전해졌다.
해킹이나 소규모 테러, 가짜뉴스 유포, 국가 기간시설 파괴, 사회 혼란 등 유·무형의 공격으로 상대에 타격을 입히는 이른바 '회색지대 도발'이 먹히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22년 말 북한이 소형 무인기를 날려보냈을 때도 남한에선 한때 혼란이 일고 정부·군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었다.
북한 입장에선 물풍선 부양이나 GPS 전파 교란 등 회색지대 도발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면서도 한미 연합군의 맞대응을 초래할 위험을 낮출 수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달 29일 담화에서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며 "(오물풍선 살포는) 성의의 선물로 여기고 계속계속 주워 담아야 할 것"이라고 예고한 만큼,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 북풍이 불 때면 북한이 또다시 오물풍선을 날려보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우리 국민들을 힘들고 피곤하게 만들고, 그 비난의 화살이 대북전단 단체와 정부로 향하게 해 대북전단 살포를 못하게 하려는 게 북한의 의도"라며 "정치권에서의 갈등 등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목적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문 센터장은 "북한 주민들이 북한 정권에 속지 않게 대북전단을 통해 정보를 주는 건데, 우리 국민들은 오물풍선이 불편하다고 대북전단 단체를 비난하면 안 된다"라며 "우리 국민들은 이를 감내하고, 정부는 김정은 정권이 견디지 못할 뼈아픈 조치를 결심·시행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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