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음 뒤 불기둥 치솟아… 히로시마는 완전 불바다였다"

한인 원폭 피해자 박남주 할머니가 전한 그날의 '기억'
"부상자들의 마지막 말은 '뜨겁다. 물 주세요'가 전부"

박남주 할머니. (외교부 공동취재단)

(히로시마·서울=뉴스1) 외교부 공동취재단 이창규 기자 = "제방 위에서 보니 히로시마(廣島)가 없어져서 겁이 났어요. 그땐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포에 찼었습니다. 형언하기 어려운 공포였어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로 피폭된 박남주 할머니(91)의 말이다.

재일교포 2세인 박 할머니는 원폭 투하가 이뤄진 1946년 8월6일 미군의 공습경보 속에 두 동생과 함께 전차를 타고 피난을 가던 중 불과 1.9㎞ 거리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영향으로 방사능에 피폭됐다. 당시 12세였다.

박 할머니는 이달 3일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에 외교부 공동취재단과 만나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침 6시30분쯤 (미군 폭격기) B-29가 날아와 공습경보가 울렸습니다. 그러다 7시 좀 지나서 공습경보가 전부 해제됐는데 다시 B-29가 날고 있었어요. '왜 그런가' 했는데 곧 폭발음이 들렸고 불기둥이 치솟았습니다."

미군 폭격기는 오전 8시15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다.

당시 일제의 강제동원 등에 따라 히로시마에 와 있던 한인 약 14만명 가운데 5만명 가량(사망 약 3만명)이 그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할머니는 누군가로부터 '아이들은 얼른 나오라'는 말을 듣고 전차에서 내렸다고 한다.

"엄청 맑은 날씨였는데 (핵)폭발 이후 '안개'가 가득 껴서 (옆 사람) 얼굴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였어요. '안개'가 조금 걷힌 뒤에 보니 어른들 머리는 전부 피투성이였고, 제방 위에서 본 히로시마는 완전히 불바다였습니다. 서쪽 마을은 건물이 다 부서져 남은 게 없었어요."

박 할머니가 현장에서 목격한 부상자 대부분 핵폭발 과정에서 발생한 열기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멀리서 사람들이 손을 흔들면서 왔는데 (가까이서 보니) 손을 흔드는 게 아니라 피부가 (화상에 녹아) 늘어진 것이었어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전부 화상을 입었고 한번 넘어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 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말은 '천황폐하 만세'도, '어머니, 아버지, 도와주세요'도 아니고 '뜨겁다. 물 주세요'가 전부였습니다."

박 할머니는 지금도 '물'을 보면 그 당시 생각이 나 "가슴이 아프다"며 "그날 저녁에 구급대원이 왔지만 (화상 환자 가운데) 생존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전했다.

박 할머니에 따르면 히로시마의 재일동포들은 현지 일본인들은 달리, 피폭 뒤에도 폭심지로부터 2㎞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박 할머니 가족들은 그해 8월15일 광복 또한 그곳에서 맞아야 했다. 박 할머니는 당시 피폭의 영향으로 현재 피부암과 유방암 등을 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올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당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함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했다. 한일정상이 이곳을 함께 찾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윤 대통령은 박 할머니를 비롯한 히로시마의 한인 원폭 피해자와 후손들도 만나 위로했다.

박 할머니는 "지금 와선 한국이나 일본 정부에 원하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없다"면서도 "지금도 재일동포는 일본에서 공직자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yellowapoll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