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이어 중동서도 잇단 '전쟁' 양상… 美 영향력 약화 때문인가

'2개의 전쟁 전략'은 옛날 얘기… 직접 개입보다 '확전 방지' 초점
"현대전서도 재래식 무기가 여전히 중요… 핵사용은 제한" 평가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작년과 올해 유럽과 중동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2개의 전쟁'이 벌어졌다. 작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이달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에 따른 '전쟁'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의 이번 공격을 '전쟁' 행위로 규정하고 군에 보복 공격을 지시했다. 이후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남부 일대뿐만 아니라 하마스의 거점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에서도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2개의 전쟁' 전략(2-Wars Strategy)은 1990년대 미국의 대외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의 '핵심 지역'인 한반도와 중동 등 2개 지역에서 동시에 전쟁이 발발한 경우 미군이 한 곳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다른 곳의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 정부는 2010년대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거치면서 이 같은 '2개의 전략'을 사실상 포기했다. 대신 미국은 두 곳이 동시에 전쟁 위기를 맞을 경우 한 곳에선 승리하되, 그때까지 다른 곳에선 전쟁 '억지' 상태를 유지하는 '원 플러스'(One Plus) 전략으로 전환했다.

이후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선 아프가니스탄 철군 결정에 따라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포기했다"는 평가까지 나오며 '2개의 전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랬던 '2개의 전쟁' 표현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을 계기로 다시 회자되기 시작한 건 이들 전쟁이 사실상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과 이란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거나 전개될 소지가 있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지원을 받고 있고, 이스라엘 또한 미국의 주요 우방국 가운데 하나다. 이란 당국은 그동안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무장단체들을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최근 십수년간 미국의 영향력이 점차 약화되면서 세계 도처에서 역사·민족적 혹은 종교적 배경 등이 얽힌 무력분쟁 및 전쟁 양상이 빈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단 얘기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도 "과거 미국의 '2개의 전쟁' 전략은 전쟁 발발시 100% 개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 상황엔 미국이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미군의 희생은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이 그만큼 자신들의 '역할'을 축소해왔다는 것이다.

가자지구. 2023.10.10 ⓒ AFP=뉴스1

이와 관련 뉴욕타임즈(NYT)는 9일자에서 하마스의 이번 이스라엘 공격에 대해 세계가 "새로운 혼란의 시대에 빠졌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며 냉전 종식 이후 유지돼온 미국 중심의 '1극' 체제를 '다극화'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이스라엘은 우크라이나와 달리 독자적인 군사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대규모 지원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세계 최대 규모의 핵추진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를 급파하면서도 "지상군 투입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로부턴 "미국이 이스라엘을 도와 하마스 등에 대해 무력을 행사하기보다는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일종의 무력시위를 통해 '억지'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미 정부가 이스라엘 측과 달리 현 상황을 '전쟁'이 아닌 '하마스의 테러 행위'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반면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바이든 대통령은 하마스의 포격 뒤 '모든 걸 지원하겠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천명했다"며 "항모 투입도 확전을 막기 위한 것이긴 하나, 미국이 아직은 국제사회에서 힘을 쓸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측이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을 '전쟁'으로 바꿀지, '다음 단계' 행동에 나설지는 결국 하마스 등의 향후 선택지에 달려 있단 얘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충돌에서 두드러진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대량살상무기(WMD)보다는 재래식 무기가 전장에서 위력을 발휘했단 점이다.

박 교수는 "WMD는 결국 핵무기를 뜻한다. 그러나 핵사용은 '상호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에 전면전에서 사용할 가능성이 굉장히 적다"며 "국제사회 여론 악화 등 그 후과가 너무 크기 때문에 오히려 핵사용을 제한하고 제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 센터장도 "러시아 등이 핵무기를 갖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쓸 수 있는 게 아니다"며 "현대전에서도 재래식 무기가 중요하다는 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를 러시아로 부른 데서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총비서와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러시아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보유한 재래식 무기를 러시아에 지원하는 대가로 정찰위성 개발 등에 필요한 군사기술을 이전 받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