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포기·주체연호 삭제…김정은 '홀로서기' 전략, 성공할까?

북한, 지난 7일 개헌 통해 '한국은 적대국' 명시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북한이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통일론을 포기하고 주체연호를 삭제하는 등 '김정은 단독 우상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북한은 지난 17일 관영매체를 통해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가'로 규정하는 내용의 개헌 사실을 밝혔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해 말 제시한 '적대적 두 국가론'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 7일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헌법에서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등 표현을 삭제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회주의 헌법'이라는 이름의 북한의 헌법에 명시된 통일, 민족 개념은 선대의 유훈이기도 하다. 1960년 김일성 전 국가주석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처음 제시한 이후 북한의 통일 정책은 대동소이하게 유지됐다. 북한 헌법 서문 역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나라의 통일을 민족지상의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온갖 노고와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는 점을 밝혀왔다.

따라서 기존의 통일론 폐기가 북한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김천식 통일연구원 원장은 "(북한의 통일, 민족 개념은) 정권 수립 이후 70년간 이어져 온 북한의 사상적 뿌리이자 그동안 주민들을 동원하고 결집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며 "이를 버리는 것을 주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라고 판단했다.

일면 과감해 보이기도 하는 북한의 정책 변화는 '오롯한 지도자'로서의 김 총비서의 입지 강화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선대의 그늘에서 벗어난 최고지도자를 만들기 위한 북한의 시스템의 변화로도 볼 수 있다.

북한은 올해부터 김일성 주석 생일(4월 15일)의 공식 명칭을 우상화의 의미가 담긴 '태양절'에서 '4·15(절)'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2월 16일)을 지칭하는 '광명성절'이라는 용어도 올해를 기점으로 북한 매체에서 거의 사라졌다.

이어 노동신문은 지난 13일부터 지면에서 '주체연호'를 표기를 생략하고 있다. 주체연호는 김일성 주석이 태어난 1912년을 주체 1년으로 삼는 연도 표기법으로, 사실상 김 주석의 신격화를 위해 제정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주체연호 사용규정을 만들고 이를 각종 문서와 출판물, 우표 등에서 공식적으로 써왔다.

주목할 점은 김정은의 '단독 우상화' 작업이 이전 지도자들보다 훨씬 이른 나이부터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노동당 제8기 제10차 전원회의에 참석한 간부 전원은 처음으로 김 총비서의 얼굴이 단독으로 담긴 '초상휘장'을 달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초상휘장은 최고지도자의 얼굴이 새겨진 배지인데, 김일성·김정일 주석은 각각 58세·50세 즈음 단독 초상휘장이 제작된 반면 김 총비서는 올해 40세의 나이에 단독 초상휘장이 제작됐다.

최고지도자의 '유일영도체계'를 강화하는 것은 양면적 평가가 가능하다. 북한의 체제가 불안정해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과, 오히려 체제 유지의 자신감이 높아져 내부를 더 단속할 수 있다는 평가가 동시에 나오는 이유다.

전반적으로는 북한의 체제에는 여전히 불안정성이 더 높아 보이는 지점이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장기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경제난에, 확대되는 외부 정보 유입을 북한의 변화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장마당 세대(1980년대 이후 출생 세대) 사이 한류의 확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최근 3~4년 사이 '외부사조'를 단속하는 법을 여러 개 제정했는데, 이는 한국의 문화, 외부의 문화 유입이 북한 젊은 세대에게 자유, 인권의 가치를 일깨우면서 자연스레 체제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여러 가지 체제불안 요소 속에서 김정은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색깔과 성과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통일 등 선대의 기조를 과감하게 버리면서라도 본인의 정권 유지를 우선시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주민들 사이 보이지 않는 당혹감이 존재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북한의 행보가 '과도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 정권의 현 정세 및 여론에 대한 판단이 주민들의 정권에 대한 평가와 서로 들어맞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천식 원장은 "자신의 성과를 과대평가한 김정은의 오판"이라며 "그간 선대가 유지해 온 북한의 통일 정책과 민족 개념은 김정은에게도 정치적 자산인 건데 이를 무시하고 본인의 우상화에만 공을 들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실패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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