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행사서 바뀐 애국가 제창한 '1호 부녀'…빠르고 조용한 北 '통일 지우기'
온실 준공식서 '삼천리'를 '이 세상'으로 바꿔 불러…'개사' 애국가 전국에 시달
'남북 별도 국가' 선언 3개월…北 매체, 선전선동 없이 조용히 후속 조치 이행
- 양은하 기자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그의 딸 주애가 공식 석상에서 가사가 바뀐 애국가를 제창하는 모습이 주민들이 보는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됐다.
김 총비서가 남북 관계에서 '민족' 개념을 없애고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한 이후 3개월 가까이 지나도록 '통일 담론' 포기에 대한 북한 관영매체의 선전선동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통일 지우기'는 조용히,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TV는 지난 16일 강동종합온실(농장) 준공 및 조업식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준공식 시작과 함께 북한 국가가 연주·제창됐는데, 가사 중 '삼천리'가 등장하는 대목에서 김 총비서와 주애가 '이 세상'이라는 새 가사로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지난달 말 평양 화성지구 3단계 1만 세대 살림집(주택) 건설 착공식이나 평안남도 성천군의 지방공업공장 착공식 때만 해도 TV는 관련 부분을 부각해서 보여주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최고지도자가 바뀐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선명하게 공개한 셈이다.
이는 북한 내부적으로 개사된 애국가가 전 주민들에게 시달됐다는 의미로 보인다. 실제 조선중앙TV가 이달 7일 보도한 영상에서 김정숙평양제사공장 사무실 벽에 걸린 벽보에 개사된 애국가 가사가 걸려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북한이 애국가에서 한반도 전체를 상징하는 '삼천리'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이 세상'으로 바꾼 사실은 지난달 외무성 홈페이지에서 처음 확인됐다. 다만 북한 당국의 공식 지침을 전하는 관영매체에서는 관련 조치가 언급된 적이 없다.
북한은 김 총비서가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한 데 따라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 세워진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하고, 평양 지하철역 중 '통일역'에서 '통일'을 빼고, 각종 한반도 지도에서 남한 부분을 삭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이 역시 북한 매체에서 직접 언급 및 발표되지는 않고 있다.
'민족', '통일'을 지우라는 김 총비서의 지시를 신속하지만, 또 한편으로 상당히 조용히 이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 선대의 유훈에 반하는 김 총비서의 '민족 통일론' 포기가 북한의 엘리트 계층이나 주민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북한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통상 당의 새 기조나 정책이 제시되면 연일 해설 기사를 싣고 대대적인 선전에 나서는데, 이번에는 김 총비서가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와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두차례나 '두 국가론'을 제시했지만 관련한 신문 사설조차 나오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도 "급격히 선대의 업적을 지우는 것은 내부적으로 이념의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조용히 단계적으로 '통일 지우기'를 하고 있다는 추측을 내놨다.
다만 민족 통일론 포기가 단순히 상징물 삭제만으로 이뤄질 수 없고 그에 따른 역사적 설명과 새로운 이론 정립이 필요한 작업인 만큼 북한이 당의 '반통일' 노선 변화 선전에 나서기까지는 시간을 두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어 보인다.
당장 북한은 새 남북관계를 반영한 헌법 개정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때문에 우리의 총선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도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나름의 이론이 마련될 때까지는 조용히 내부적 조치만 이어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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