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면전에 삐라 던진 남북…40년 전 회담장에서도 '전단'으로 파열음
최초 공개된 남북대화 사료집서 확인…"고의적"·"무례해" 등 공방
1·3차 남북 체육회담 직전 전단 살포…단일팀 논의 무산
-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우리 제도를 모욕하는 아주 나쁜 삐라입니다."
1984년 5월 25일. 북측이 제3차 남북 체육회담 당일 새벽에 남측이 '삐라(전단)'를 뿌렸다며 이렇게 말했다. 남북은 제각기 체육회담이라는 본질을 논하자고 했지만 직전에 발생한 버마 사건, 최은희·신상옥 납치 사건 등의 언급으로 회의는 계속 원점으로 돌아갔다.
제1차 회담 직전에도 대북전단은 이미 한 차례 살포되어 양측은 대화에 날을 세웠다. 그러다 결국 북측은 이날 직접 전단을 가져와 남측 대표자에 집어 던지고 "고의적"이라며 항의했다. 이에 남측도 "무례한 짓"이라며 다시 북측에 전단을 도로 던지며 회의는 무산됐다.
2일 통일부가 공개한 '남북대화 사료집 제10권'에 따르면 이처럼 남북은 40년 전에도 전단을 두고 쉼 없는 파열음을 냈던 것으로 나타났다.
판문점 중립국 감사위원회 회의실에서 개최된 '체육회담'은 남북이 1984년 7월 LA올림픽 등에 참가할 남북 단일팀 구성 출전 논의를 위해 성사된 만남이었다. 하지만 회담 직전 양측 간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로 감정이 격해져 회의 진행이 어려웠고, 예민한 사안 중에는 삐라도 포함돼 있었다.
1984년 4월 10일 열린 제1차 회담에서 남한 측 수석대표인 김종규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은 체육 문제 논의에 앞서 '버마 사건사건'에 대해 북한 측의 사죄와 납득할 조치를 촉구했다.
버마 암살 폭파 사건은 1983년 아웅산 묘소에서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북한 공작원에 의해 저질러진 폭파 사건이다. 당시 미얀마 검찰 당국에 체포된 범인들이 죄상을 밝히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지만 북한은 지속해서 자신들의 범죄를 부인해 왔다.
또 남측은 배우 최은희와 영화감독 신상옥의 강제 납북 사건이 한국 선수단의 신변과도 연관된 사안이라고 주장하며 선수단 보호가 절대적이기에 납치 행위에 대한 사죄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지만 이 역시도 북한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북한은 이번 회담과 전혀 상관없는 '정치적 사안'을 철회하라고 남측에 요구했다. 북측은 "남측의 정치적 발언과 삐라 사건은 본 회담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하나의 목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며 일방적으로 회의장을 퇴장했다.
우리 측 수석대표는 전단을 문제 삼은 북측에 "선전 삐라 살포와 대남 '파괴방송'은 여러분들이 휴전선 북방에서 항상 하는 대남교란 작전의 일부"라며 맞대응하기도 했다.
한 달 뒤 개최된 3차 회담에선 남북 모두 비교적 체육 관련 안건 논의에 집중하는 듯했다. 북측은 "아침에 우리 신경을 자극하는 일도 생겼다"라며 돌연 삐라 문제를 꺼냈다.
북측이 "오손도손 회의해야지 회담하는 날에만 전단을 왜 뿌리나, 회담이 되겠나"라고 따져 묻자 우리 측은 "북측 내부에서 삐라가 나온 게 아닌지", 처음부터 삐라를 들고 나와도와고 나와 시비를 하려고 나온 건지" 등을 말하며 시종일관 "상관없는 일"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다 점점 분위기가 격해져 남북이 또 서로에게 전단을 던지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결국 4차 회담이 무산되면서 남북 체육회담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후 40년 동안에도 남북은 전단 문제로 감정적 대립과 물리적 충돌을 반복했다.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2015년)과 4차 핵실험(2016년)에 대한 조치로 대북확성기 방송이 재개됐을 때는 북한의 포격·총격 등 군사적 도발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남측 탈북민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에 맞대응한다는 이유로 북한도 총 7차례에 걸쳐 2000여 개가 넘는 오물풍선을 남쪽으로 날려 보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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