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 주인 살해·몸에 설탕 뿌린 그놈…DNA로 12년 만에 체포[사건의 재구성]
손톱 밑 DNA에 덜미, 기술 발달 '재감정' 끝에 신원 확인
- 조민주 기자
(울산=뉴스1) 조민주 기자 = 2012년 1월 9일 밤 9시쯤. 울산시 남구 신정동의 한 건물 2층 다방에 40대 남성 A씨가 손님으로 들어왔다. A씨는 이혼 후 현장노동자로 일하며 여관 생활을 전전하던 중이었다.
A씨는 다방 여주인인 B씨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화를 참지 못하고 B씨의 배를 걷어차고 쓰러진 B씨 위에 올라 타 목을 졸랐다.
B씨는 손톱으로 A씨를 할퀴며 저항했지만 끝내 질식해 숨졌다. A씨는 숨진 B씨의 옷을 벗긴 뒤 테이블 위에 놓인 설탕통을 붓고 그대로 달아났다.
걸어서 태화교를 건넌 A씨는 중구 성남동 일대에서 술을 마신 뒤 여관에서 잤다. 이후 A씨는 경찰에 붙잡힐까 두려워 울산을 떠나 경남 양산에서 계속 머물렀다.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건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월 10일 밤 11시26분쯤. 당시 B씨의 사위가 약속 시간이 지났음에도 장모가 나타나지 않자 다방에 찾아가 숨져있는 B씨를 발견해 신고했다.
B씨는 출입문 바로 앞 계산대 옆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문이 잠겨있던 다방에는 열쇠뭉치가 사라졌을 뿐 통장이나 금품은 그대로 있었다.
경찰은 범인이 다방에 들어와 여주인을 살해한 뒤 밖에서 문을 잠그고 달아난 것으로 추정하고 대대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경찰은 추정 사망시각에 찍힌 인근 CCTV 화면을 모두 분석했다.
그러나 사건 현장 입구의 폐쇄회로(CC)TV 카메라는 10초마다 촬영 각도가 바뀌게 돼 있어 이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에서 범행 증거가 될 만한 장면을 확보하지 못했다. 용의자도 특정할 수 없었다.
현장에 남은 유일한 단서는 사망한 B씨의 손톱 밑에서 채취한 DNA 시료였다. 경찰은 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했지만 '남녀의 DNA가 섞여 있어 신원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고, 그렇게 이 사건은 미제로 남게 됐다.
7년 뒤인 2019년 10월. 울산경찰청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당시 다방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했던 유전정보의 재감정을 의뢰했다.
재감정 결과 그동안 발전한 DNA 증폭 감식기술로 2012년 당시 확인하지 못했던 유전자 정보의 인적사항을 확보할 수 있었다.
재감정에서 추출된 DNA 정보는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A씨의 것과 동일했다. A씨는 2013년 1월 울주군 언양읍의 한 다방에서 재떨이로 여주인을 폭행해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었다.
인적사항은 확인했지만 경찰 수사는 5년간 이어졌다. 경찰은 사건 관계인 300여 명을 만나고 A씨가 다녀간 것으로 추정되는 행선지 500여 곳을 탐문하며 증거를 수집했다.
경찰은 끈질긴 수사 끝에 'A씨가 2012년 1월쯤 신정동 다방 인근 여관을 전전했다', '단골이었던 A씨가 다방 살인사건 발생한 다음 날부터 오지 않았다'는 주변인과 다른 다방 주인의 진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27일 오전 7시께 경남 양산의 한 여관방에서 A씨를 검거했다. 12년 만에 검거된 A씨는 범행을 부인했으나 수집한 증거를 내밀자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울산경찰청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의 포기를 모르는 수사 의지와 DNA 증폭 감식기술의 발전으로 12년 동안 풀리지 않던 장기 미제 사건이 해결된 것이다.
A씨는 B씨를 살해한 뒤 설탕을 뿌린 이유에 대해서는 "설탕을 뿌린 것은 인정하나 이유는 모르겠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울산지검은 지난달 23일 '울산 신정동 다방 여주인 살인 사건' 피의자 A씨를 살인죄로 재판에 넘겼다.
minjum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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