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국과수 분석에 '증거 부족' 판단…'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파장 주목

'증거 부족' 불송치로 국과수 감정 신뢰도에 의문?
감정결과도 상반…'강릉 사례' 급발진 다툼 교보재 되나

지난해 12월 강원 강릉에서 일어난 차량 급발진 의심사고 현장.(뉴스1 DB)

(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 지난해 12월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차량 급발진 의심사고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경찰과 법원 선정 감정인이 잇따라 국립과학수사원(국과수) 감식결과와 상반되는 입장을 내놔 주목된다.

그동안 급발진 의심사고 관련 수사와 소송에서 국과수 감식결과가 주요 근거로 활용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이 국과수 의견과 배치되는 결정이 잇따라 나오면서 법원의 판단에 눈길이 쏠리는 한편, 향후 유사 사례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과수 감정 증거부족" 할머니 불송치한 경찰

해당 사건을 조사한 강릉경찰서는 최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된 A씨(68·여)에 대해 '혐의 없음' 판단을 내리고 사건을 불송치했다.

경찰은 아이의 유족이자 A씨의 가족 측에 수사결과를 통지하면서 "(국과수)분석 결과를 A씨 과실에 의한 사고로 뒷받침할 자료로 삼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경찰의 판단이 제조사의 '차량결함'을 지적했다고는 볼 수 없다.

경찰은 국과수의 교통사고 분석 감정결과, 제동 계열에 작동 이상을 유발할 만한 기계적 결함은 발견되지 않아 브레이크는 정상 작동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경찰은 국과수 감정결과가 실제 엔진을 구동해 검사한 결과가 아닌데다, 실제 차량 운행 중 제동 장치의 정상 작동 여부, 예기치 못한 기계의 오작동을 확인할 수 있는 검사가 아니라고 봤다.

국과수 분석 결과를 A씨 과실에 의한 사고로 뒷받침할 자료로 삼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찰은 지난 3월 국과수로부터 감식결과를 받았지만, 이내 재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이 국과수의 '감정 방법'이 일부 부실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강원 강릉에서 일어난 차량 급발진 의심사고로 아들을 잃은 이모씨가 해당 사고 민사소송 첫 변론기일 참석을 위해 23일 춘천지법 강릉지원에 들어서고 있다. 2023.5.23/뉴스1 윤왕근 기자

◇'음향분석' 감정결과도 국과수 감식과 상반

경찰의 판단과 더불어 법원이 선정한 전문감정인의 감정 결과도 국과수 감식과 상반되는 분석이 나왔다.

운전자 A씨와 그 가족이자 사고로 숨진 아이의 유족이 차량 제조사를 상대로 낸 7억6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다루고 있는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재형 부장판사)에서 진행한 음향분석 감정 결과가 최근 나왔다.

음향분석 감정을 통해 먼저 파악해 볼 부분은 사고 차량 운전자인 할머니의 변속레버 조작여부였다.

국과수는 당시 사고차량이 급가속 현상을 보이면서 최초 앞서 가던 기아 모닝 차량 충돌 직전 변속레버를 주행(D)에서 중립(N)으로 바꿨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러나 음향분석 감정인은 "사고 당시 상황을 일부 재연한 조건 하에서 변속레버를 D→N으로, N→D로 반복조작하며 샘플링한 음향데이터 발현 특성과의 동일성을 보유한 음향정보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운전자가 모닝 충돌 직전 변속레버를 D에서 N으로 바꿔 가속페달을 밟았고, 다시 D로 바꾸면서 모닝 차량을 추돌했을 가능성을 내놓은 국과수와는 상반되는 결과다.

이번 음향분석 감정결과에 앞서 지난 8월 나온 사고기록장치(EDR) 감정 결과 역시 해당 장치의 신뢰성을 의심케 하는 감정 결과가 나오면서 향후 재판에서 법원의 판단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사고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손배소 감정기일이 열린 27일 사고차량 운전자 아들이자 사고로 숨진 아이의 아버지인 이모씨가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심경을 밝히고 있다. 2023.6.27/뉴스1 윤왕근 기자

◇'강릉 사례' 국내 급발진 다툼 교보재 될까

이처럼 경찰과 전문감정인의 판단이 국과수 감식 결과가 상반되면서, 향후 다른 급발진 의심사고 관련 수사와 소송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먼저 국과수 감식에 대한 의문부호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사건을 수사한 경찰이 운전자인 할머니 A씨를 '혐의없음' 불송치하면서 근거로 든 것은 국과수 감정방법이 과실을 입증하기에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경찰이 유족 측에 통지한 수사결과를 요약하면 △실제 엔진을 구동해 검사한 결과가 아니다 △기계 오작동 확인할 수 있는 검사가 아니다 정도로 볼 수 있다. 국과수의 감식 방법이 부실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되는 부분이다.

이에 향후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국과수의 감식 방법이 동일할 경우, 급발진을 주장하는 운전자 측에서 '강릉 사례'를 들어 이의를 제기하거나, 수사기관에서 이를 근거로 삼아 판단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또 이번 사건 법원이 선정한 전문감정인에 의한 사고기록장치(EDR), 음향분석 결과가 운전자 측에 유리하게 나오면서 향후 비슷한 사례에서 감정신청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강릉 사례'가 대기업을 상대로 급발진을 입증해야 하는 소비자들에게 교보재처럼 활용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한편 지난해 12월 6일 오후 3시 56분쯤 강릉시 홍제동 한 도로에서 60대 A씨가 몰던 소형 SUV가 배수로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동승자 이도현군(12)이 숨지고, A씨가 다쳐 병원 치료를 받았다.

이 사고로 숨진 아이 아버지 이씨는 '자동차 제조사가 급발진 결함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며 국민동의 청원을 신청, 5만명 동의 요건을 충족해 국회 소관위원회인 정무위로 회부돼 제조물책임법 개정 논의가 이뤄질 수 있게 됐다.

또 강릉을 지역구로 5선의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해당 사안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는 등 전국민적 주목을 끌고 있다.

wgjh654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