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폭력은 맥락이 중요"…학폭 아들 감싼 정순신 부부

"기말고사 엉망 돼"…학폭위·재판과정서 책임 지속 회피
교사 "진술서 부모가 전부 코치…또다른 피해학생 있어"

서울 서대문구 국가수사본부에서 관계자들이 오가고 있다. ⓒ News1 조태형 기자

(강원=뉴스1) 이종재 기자 =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자녀 학교폭력 논란’으로 물러난 정순신 변호사가 당시 아들의 학교 폭력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진술서 내용에 직접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 정 변호사 측은 학교 처벌이 학업에 피해를 끼칠 수 있다며 적극 방어에 나서는가 하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와 재판과정에서는 “언어적 폭력은 맥락이 중요하다”며 어떻게든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였다.

26일 정 변호사의 아들 정모씨의 학교 폭력 관련 판결문을 살펴보면 2017년 강원도 모 자립형 사립고에 입학한 정씨는 동급생 A씨에게 “돼지새끼”, “제주도에서 온 새끼는 빨갱이” 등 비하 발언과 모욕을 느끼게 하는 발언을 하며 지속적인 언어폭력을 행사했다. 이 같은 이유로 정씨는 2018년 3월 학폭위로부터 서면사과 및 전학 처분을 받았다.

이에 정씨 측은 징계 취소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모두 패소했다.

판결문에 포함된 당시 ‘학교폭력 사안조사 보고서’ 등에 따르면 2018년 3월 학폭위 조사 과정에서 피해학생인 A씨는 “죽을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내가 참고 전학 갈까 생각했지만,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설득해 주셔서 신고했다”며 자신의 피해사실을 진술했다.

그러나 당시 정씨의 부모는 “물리적으로 때린 것이 있으면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겠지만, 언어적 폭력이니 맥락이 중요한 것 같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한 위원은 “가해학생이 깊이 반성하고 진실을 모두 말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점이 너무 유감스럽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김건희 여사 특검 촉구 촛불승리전환행동 집회에서 한 시민이 아들 학교 폭력 논란에 휩싸인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된 정 변호사는 아들 학폭 논란으로 임명 하루 만인 이날 사퇴했다. 2023.2.25/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이후 석달 뒤 열린 회의에서는 정씨의 부모가 아들의 진술서 내용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해당 고교 교사는 “처벌보다 선도의 목적이 있으니 회유도 하고 타일러도 보고, 피해학생의 아픔에 대해서도 공감을 시켜주고 싶었다”며 “그런데 원고(정씨)의 부모님께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되게 두려워하셔서 2차 진술서 같은 경우는 부모님이 전부 코치해서 썼다”고 진술했다.

이어 “원고를 선도하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사실 부모님께서 많이 막고 계신다”며 “원고가 1차로 진술서를 썼는데 부모님께 피드백을 받아서 다시 교정을 받아오는 상태였다”고 했다.

당시 회의에서는 정씨가 서면사과, 교내봉사 40시간, 출석정지 7일, 특별교육이수 10시간 등 학교 처벌을 이행했냐는 위원들의 질문도 있었다.

정씨의 부모는 “교내봉사와 출석정지 부분은 기말고사 바로 앞과 뒷 부분이다. 그걸 다 받으면 12일의 수업을 못 듣게 되니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리는 상황이어서 현재는 미뤘다”고 말했다.

이에 한 위원은 “제출한 의견서를 읽어보니 아마도 잘못했다고 안 하시는 것 같다.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은 정말로 진정성이 있어야 된다”고 지적했다.

교사도 “정씨가 반성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선도를 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어떻게든 책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교사 입장에서는 많이 실망했다”고 말했다.

결국 위원회는 정씨가 반성을 하지 않는 점, 피해정도가 심하다는 점, 학교 측 의견 등을 종합해 강제전학이 필요하다며 학교폭력 수준에 대한 점수를 전학 조치와 퇴학 조치에 해당하는 16점으로 평가했다.

서울 서대문구 국가수사본부.(뉴스1DB) ⓒ News1

이 과정에서는 또 다른 피해자가 있었다는 해당 고교 교사의 증언도 나왔다.

해당 고교 교사는 “정씨는 본인보다 급이 높다고 판단하면 굉장히 잘해주고, 급이 낮다고 생각하는 학생에겐 모멸감을 주는 식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습관이 있다.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니고, 또 다른 피해학생도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어진 재판과정에서도 정씨 측은 언어폭력과 피해학생의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며 계속해서 책임을 회피했다.

정씨 측 소송대리인은 “별명을 부른 것에 불과하다”, “해를 끼치는 의도가 없었다면 학교폭력으로 인정될 수 없다”, “언어폭력 정도로 고교 남학생이 일반적으로 피해학생과 같은 피해를 입는다고 보기 어렵다”, “본인의 기질이나 학업 관련 스트레스가 피해학생의 상태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며 언어폭력과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부인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심리한 춘천지법 행정1부는 “이 사건이 다른 학교폭력 행위들에 비해 결코 경미하다고 볼 수 없다. 정씨는 A씨 외에도 다른 학생에게도 유사한 방식으로 모욕을 주는 언어폭력을 행사했다”며 “정씨는 상당 기간에 걸쳐 피해학생에게 학교폭력을 행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큰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정군 측은 항소했으나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이후 다시 상고했지만 대법원에서도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해당 고교 관계자는 <뉴스1>과 통화에서 ”정씨는 2019년 2월 전학 조치됐으나 피해학생은 이후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정상적으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반고로 전학을 간 정씨는 고교 졸업 후 2020학년도 명문대 정시모집에 합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leej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