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군부독재 타도 외쳤던 고교생…43년 만에 졸업장 받았다
전주 신흥고 81회 박영화 씨, 5.27 신흥민주화운동 기념식서 졸업장 받아
박영화 씨 “후배들과 그 때의 기억 공유할 수 있어 기뻐”
- 임충식 기자, 장수인 기자
(전주=뉴스1) 임충식 장수인 기자 = ‘43년’. 전두환 군부독재 타도를 외쳤던 한 까까머리 고교생이 명예졸업장을 받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어느덧 60이 넘은 중년 사업가로 변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그에게 그 때의 일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리고 남들에게 내세우고 싶은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박영화 씨(63)는 전북자치도 전주신흥고 3학년 재학시절인 지난 1980년 5월 27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는 이날 오전 학급 예배가 끝나자마자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으로 뛰어 나갔다.
운동장에는 전교생 1500명이 모였고, 곧이어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호소문이 울려 퍼졌다. 광주의 아픔을 함께 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날은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군이 광주를 무참하게 무력 진압하던 날이었다.
학생들은 시내 행진을 시도했다. 하지만 무장한 계엄군들과 진압봉을 든 경찰들로 인해 정문조차 통과할 수 없었다. 이에 학생들은 운동장을 돌며 “전두환은 물러가라, 비상계엄 해제하라, 독재타도 민주수호, 유신잔당 물러가라”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박 씨는 “군인들이 설치는 모습을 보고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겠냐’라는 생각이 더 앞섰던 것 같다”면서 “나중에 어떤 피해를 입을까라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계엄군경은 해산하지 않을 경우 학교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교사들은 해산을 권유했고, 학생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위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은 강당으로 자리를 옮겨 시국공청회를 갖는 등 시위를 지속했다.
이날 시위로 신흥고는 다음날인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문을 닫아야만 했다. 또 25명의 학생이 무기정학 등 징계를 받았다. 구속된 학생도 2명이나 있었다. 박영화 씨도 지도 휴학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박 씨는 자퇴를 결정하고 학교를 떠났다
사람들은 이날을 ‘5.27 신흥민주화 운동’으로 불렀다. 그리고 신흥고는 이날을 기억하기 위해 매년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그리고 44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22일, 박영화 씨는 그 토록 꿈에 그리던 명예졸업장을 받게 됐다.
박 씨는 이날 명예졸업장을 받기 위해 독일에서 가족과 함께 모교를 방문했다. 박 씨는 1981년 고려대 사회학과에 입학했으며, 졸업 후 통일문제 연구를 위해 독일 유학길에 올랐고, 현재는 독일에서 사업가로 활동 중이다.
강당을 메운 학생들과 교사, 그리고 박 씨의 동기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명예졸업장 수상을 축하했다.
박 씨의 동기 정우식 씨는 “오늘은 저의 졸업식 같은 기분이 든다. 매우 기쁜 날이다”면서 “우리 후배들도 5.27 민주화운동을 본받아서 사회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1학년 유기주 학생(17) “선배님께서 43년 만에 졸업장을 받는 기분이 어떨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뜻 깊은 시간일 것 같다”며 “그동안 예전 역사에 대해 깊게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신흥고에 입학하고 오래전 선배님들이 불의에 맞서 나섰다는 그 역사들을 알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는 것 같아 좋다.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박영화 씨는 생각보다 덤덤했다.
그는 “졸업장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보다도 5.27 신흥민주화 운동의 기억을 우리 후배들과 공유할 수 있어 정말 뜻 깊다고 생각한다”면서 “44년 전에 우리가 왜 그런 활동을 했는지, 거기에 대해서 지금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한다. 뜻 깊은 5.27의 전통을 후배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학교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박영화 씨는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5.27 운동도 광주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면서 “후배들도 동료의 어려움과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친구들이 됐으면 한다. 당장 친구의 아픔을 살피는 신흥인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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