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도 다이어트 해방" 제주 상륙 '곰 4남매'의 첫 추석

제주 이주 반달가슴곰 근황…"정형행동도 거의 사라져"
다친 야생동물 보호 자연생태공원 방문객 3배 넘게 늘어

9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자연생태공원에서 반달가슴곰들이 사과를 먹고 있다. 2024.9.17/뉴스1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추석엔 포식하고, 명절 지나면 얘들도 체중계 한번 올라가 봐야죠."

지난해 12월 10년을 살던 비좁은 전시장을 벗어나 제주로 이주해 온 반달가슴곰 4마리도 첫 민족 대명절 추석을 맞았다.

지난 9일 서귀포시 성산읍 제주자연생태공원 반달가슴곰 생태방사장. 달곰이·일곰이(이하 암컷)·반달이·웅이(이하 수컷)는 새 보금자리에 완벽 적응해 저마다 물놀이장에 드러눕거나 해먹에 누워 초가을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사육사가 사과를 손에 들고 나타나자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달려가는 곰 네마리는 제주에 막 도착했을 때에 비하면 언뜻 봐도 귀엽게 살이 오른 모습이었다. 두 발로 사과를 소중하게 잡아 한 입씩 먹거나 물에서 건진 사과를 손등에 올려 한입에 먹는 기술까지 보여줬다.

사과, 감귤, 수박, 옥수수, 고구마, 당근, 무, 감자…전시장에서 일평생 사료만 먹던 곰들은 이제 제주에서 온갖 맛있는 먹이를 먹으며 달콤한 '곰생 2막'을 누리고 있다.

사람처럼 동물에게도 포식 뒤 다이어트는 숙명이다. 이주 초기엔 곰들의 적응 문제를 걱정했다면 이제 '다이어트'가 최대 과제가 됐다.

강창완 제주자연생태공원 원장은 "당분이 많은 과일을 너무 많이 주면 안 좋다고 해 건강을 위해 먹이도 크게 줄이고, 운동량을 늘리고 있다"며 "사료도 원래는 그릇에 줬는데 지금은 방사장에 넓게 뿌려 움직이게 한다"고 말했다.

9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자연생태공원에서 방문객들이 반달가슴곰 4마리와 인사하고 있다. 2024.9.17/뉴스1

주문제작한 곰들의 전용 체중계도 추석이 지나면 도착해 처음으로 무게를 재볼 계획이다. 곰들도 무게가 불어나면 당뇨 등 여러 질병을 앓을 수 있어 체계적인 관리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래도 추석은 추석. 명절연휴에는 그동안 크게 줄였던 곰들의 '최애' 간식인 달콤한 과일과 수박이나 참외, 사과를 넣어 얼린 특식도 준비했다.

곰 4남매가 제주로 이주하고 달라진 건 몸무게만이 아니다. 비좁은 전시장에 살며 생겼던 정형행동도 제주에 오고 나서 대부분 사라졌다.

실내사육장 벽을 긁거나 방사장을 뱅뱅 돌던 일곰이의 정형행동도 지난달부터 크게 호전돼 사육사들도 한시름을 놨다. 평생을 살던 비좁은 우리의 30배에 달하는 400여 평 생태방사장에서 자유롭게 뛰논 결과다.

곰 네마리를 새 식구로 맞은 뒤 이곳 자연생태공원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매해 3만명이 채 되지 않던 방문객 수는 올해에만 8만~10만명으로 3배를 넘어설 전망이다. 특히 지난 1월 곰들을 처음으로 공개한 뒤엔 주말 이틀간 3000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려 '주차대란'까지 벌어졌다.

9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자연생태공원에서 반달가슴곰이 물에 드러누워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2024.9.17/뉴스1

사실 자연생태공원은 야생에서 다쳐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동물들을 보호하는 곳으로, 한국조류보호협회 제주지회가 위탁받아 운영한다. 이곳에는 다리를 잃은 노루나 날개를 다친 조류 40여 마리가 살고 있다.

입장료도, 먹이주기 체험도 모두 무료로, 사람과 야생동물의 공존을 고민하게 하는 의미 있는 곳이다. 곰들 덕에 생태공원을 찾는 방문객이 많이 늘어나며 생태교육 홍보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강 원장은 "사실 생태공원이 있는 줄 모르는 분들도 많았는데 곰들이 오고 나서 학생들 방문도 크게 늘었다"며 "신청자가 있을 때면 하루 두 번 공원 투어식으로 다친 동물들을 소개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와 노루, 토끼 등을 보호하는 생태공원 측도 '곰 키우기'는 처음인 만큼 지극정성이다. 사육곰 구조단체인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지리산 반달가슴곰 진료센터 관계자에 수시로 조언을 구하며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강 원장은 "공원 주변에 곰들 먹이로 주기 위해 콩, 메밀도 심고 있다"며 "곰들이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게 체중조절도 하면서 정형행동도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정성으로 돌보겠다"며 웃었다.

이들 곰 네 마리는 정부가 2025년까지 곰 사육을 종식하기로 한 뒤 민간 사육시설에서 보호시설로 옮겨진 첫 사례다.

oho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