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을 일본인이 고발…연극 '봉선화3' 광주서 공연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투쟁 서사 담아
정신영 할머니 등 피해자들 "훌륭한 일본인들에 감사"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른 연극 봉선화3 공연을 마친 배우들과 관계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2024.2.24./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광주=뉴스1) 서충섭 기자 = "일제 강제동원의 아픔부터 일본 정부를 상대로 힘겹게 투쟁한 역사를 정말 자세하고 훌륭하게 그려줘 감사합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조선인 소녀들을 징발해 노동력 등을 착취하고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자국민들이 고발하는 연극이 광주에서 펼쳐졌다.

24일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는 시민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극 봉선화의 첫 광주 공연이 이뤄졌다.

연극은 지난 1998년부터 일제 강제동원 피해 할머니들을 도왔던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와 연극단체 '아이치 현민의 손에 의한 평화를 바라는 연극모임' 등 2개 단체가 합작해 만들었다.

이 연극에서는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 제작소에 동원된 양금덕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의 인권유린 실태와 기나긴 명예회복 투쟁을 다뤘다.

특히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 23명은 일부 아마추어 연극단 배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학생이나 직장인, 퇴직자 등 평범한 일본 시민들이었다.

2시간의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박수와 함께 '혼또니 아리가또 고자이마스(정말 고맙습니다)' 등 일본 배우를 향한 광주 시민의 감사 인사가 터져나왔다.

이날 연극 관람에는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에 나선 원고 등이 자리했다.

특히 지난 2022년 일본연금기구로부터 후생연금 탈퇴수당금 931원을 강제노동 대가로 받은 피해자 정신영 할머니도 함께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정신영 할머니가 일본 정부를 고발하는 연극 봉선화를 관람하고 취재진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2024.2.24./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정신영 할머니는 "홀어머니가 6남매를 키워 중학교도 못 갔는데, 학교를 보내준다고 해 따라갔다가 고생했다"며 "일본 사람들이 진실을 알려줘 너무나 고맙고 원이 없다"고 말했다.

일제에 강제동원됐다가 1944년 도난카이 대지진으로 사망한 최정례 할머니의 조카 며느리인 이경자 할머니(79)도 "일본 사람들이 이렇게 훌륭한 연극을 만들어 주고 진실을 알려주는 것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라며 "오랜 시간이 지나 우리에게도 잊히는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억해 준 것에 놀랐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연극 봉선화는 나고야 소송지원회가 양금덕 할머니를 도와 나고야지방재판소에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던 지난 2003년 처음 나고야 공회당에서 공연됐다.

봉선화3을 연출한 나카 토시오 감독은 "과거를 망각하고는 결코 미래는 있을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이번 광주 공연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겠다"고 말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일본강제동원시민모임의 이국언 대표와 광주 시민들이 정부가 하지 않는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양심세력과 힘을 합쳐 기억과 계승을 이뤄내고 있다"며 "광주시도 시민의 뜻을 받들어 강제동원 역사를 기억과 계승으로 응원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단체들은 내년 초 일본 도쿄에서의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zorba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