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무상수리해 월10만원에 드립니다' 해남 북일면의 기적[지방소멸은 없다]

'주민 주도' 해남군 북일면 '작은학교 살리기 프로젝트'
전입인구 늘며 폐교위기 탈출…14개 읍면 중 유일 인구 증가

편집자주 ...영영 사라져 없어지는 것. '소멸'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토록 무섭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 옆의 이웃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숙제를 힘 모아 풀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그 현실과 고민을 함께 생각합니다.

해남 북일면 작은학교활성화추진위원회가 2021년 11월9일 서울에서 개최한 학생 유치활동 모습./뉴스1

(해남=뉴스1) 박진규 기자 = "저희 학교로 전학오면 해외연수는 물론, 집도 주고 부모님들 일자리도 마련해 줍니다."

2021년 11월9일.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이색 캠페인이 열렸다. 전남 해남군 북일면에서 올라온 주민들이 풍물놀이를 앞세워 시민들의 관심을 끌며 학생 유치활동을 펼쳤다. 어린 학생들도 학교가 폐교위기에 몰렸다며 '북일초로 전학오세요' 피켓을 들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이 같은 홍보전은 북일면 작은학교활성화추진위원회가 주도했다.

당시 북일초등학교의 전교생은 22명. 그나마 어르신 학생 4명을 제외하면 순수 학생은 18명에 불과했다. 다음해인 2022년 개교 100주년을 맞지만 폐교 얘기가 흘러나왔다.

학교가 문을 닫을 상황에 처하자, 위기를 느낀 주민들이 직접 학생 유치활동에 나섰다. 말 뿐인 학생 유치가 아닌 다양한 인센티브를 통한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위해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다.

학생들에게는 전원 해외연수를 보내주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입학생에게는 1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읽고 싶은 도서는 무한 지원하고 4계절 생태체험활동과 온종일 돌봄센터 운영, 마을교사 채용 등 도시 못지않은 교육환경을 제공한다.

자녀들과 함께 이주하는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기 위한 혜택도 다양하다.

정착을 위해 빈집을 무상수리해 월 10만원의 임대료에 제공한다. 일자리도 알선해준다. 김장김치와 쌀 제공, 연간 60만원의 귀농자금 지원, LH 임대주택도 입주 가능하다.

2022년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 해남 북일초 전경. 2021년까지 폐교 위기에 몰렸던 학교는 현재 학생수가 증가하면서 학급수가 늘고 교사도 충원됐다./뉴스1

그 결과 유치 활동 첫해에 전국에서 260여 가구가 문의를 하는 등 뜨거운 관심 속에 총 76가구가 신청서를 냈다.

추진위는 '유치원과 초·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두고 5년 이상 머물 수 있는 가구'를 우선 선발한다는 방침 아래 최종 전입 예정가구 15가구보다 많은 22가구를 선정했다. 이주인원도 97명에 이른다.

예상보다 많은 지원으로 리모델링 빈집을 추가로 확보했다.

올해는 12가구 56명이 이주한다. LH에서는 15가구 규모의 빌라단지와 문화복지센터를 신축해 제공해 주기로 했다.

이 같은 일은 모두 북일주민자치회가 주관한다. 자치회는 빈집 알선부터 개보수, 입주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부모들 일자리 또한 학교 보조교사, 면사무소 행정보조, 인근 어업법인 사무직, 인테리어직, 사회복지사, 방과후 교사 등 단순한 농어업이 아닌 각기 적성에 맞는 맞춤형 일자리를 맺어주고 있다.

신평호 북일주민자치회장은 "처음에는 누가 이곳 땅끝까지 오겠냐는 심정으로 5가구만 이주해도 대성공이라 생각했다"며 "개교 100주년 행사를 계획했던 북일초 동문회에서도 큰돈을 모아줘 마을을 살리는 데 힘을 보탰다"고 소회했다.

그는 "당초 대다수가 노인뿐인 마을 주민들도 학교가 폐교되고 요양원이 들어서길 기대하는 눈치였으나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이 없어진다는 설득이 점차 주민들에게 먹혔다"고 뿌듯해했다.

학생 유치 캠페인으로 인해 2022학년도에는 북일초의 학생수가 56명으로 늘었다. 또한 전입을 문의하는 가구수가 꾸준히 늘면서 2023학년도에는 지난 2월 12명이 졸업했으나 7명이 입학하는 등 학생수 47명을 유지했다.

올 5월에도 3가구가 전입오고, 1학기를 마치고는 13가구의 추가 이주가 예정돼 있어 학생수는 60명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김을용 북일초 교장은 "다른 지역과 달리 우리 학교는 지난해 2학급이 늘고 교사도 3명을 증원했다"면서 "유치원도 14명이 입학해 학생수 감소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북일초 학생들의 해외문화탐방기념 사진. 북일면 주민자치위원회는 매년 북일초 학생들에게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뉴스1

해남군 인구 변화에서도 북일면의 성과는 감지된다.

2022년 2월말 기준 해남군 전체 인구는 6만8589명으로 전년 대비 1518명이 감소했으나 14개 읍면 가운데 북일면만 유일하게 증가세를 보였다.

북일면의 경우 사망 42명에 86명이 전출했으나 192명이 전입하며 오히려 인구가 늘어났다.

올해(2월 기준)는 전입 인구가 다소 줄었으나 해남 전체 인구가 1년 사이 1449명이 감소한 것에 비하면 북일면 인구 감소는 27명에 그쳤다.

올해 예정된 유입 인구를 감안하면 해남 읍면 중 유일한 인구 증가 지역으로 기록될 것으로 기대된다.

명현관 해남군수는 "북일면의 작은학교 살리기가 인구유입 정책의 선진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며 "빈집 리모델링, 각종 생활SOC, 일자리, 교육 프로그램 등을 연계해 새로운 주거플랫폼을 구축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04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