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 학원비라도 벌려고…" 대리운전 40대 가장 보행섬서 음주차량에 참변
코로나19로 대리기사 나섰는데...인도 덮친 차량에 숨져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던 가장인데...딸들에 뭐라 설명하나"
- 이승현 기자
(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 "초등학생인 두 딸을 키우려 투잡을 뛰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던 가장인데… 음주운전자 때문에 이렇게 세상을 떠나는 건 말이 안돼요."
8일 오후 광주 동구의 한 장례식장.
이날 오전 3시30분쯤 광주 한 인도에서 만취 운전자의 차량에 치어 숨진 40대 가장 엄모씨의 유족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엄씨는 이날 광산구 흑석사거리에서 대리운전을 하려고 이동하던 과정에서 만취상태로 운전을 하던 차량에 치어 숨을 거뒀다.
유족들은 "고인은 초등학교 4년과 2학년인 어린 딸들이 있다"며 "딸들이 엄마한테 '아직 아빠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오늘 힘드신가보다. 언제쯤 오시냐'고 물어보는데 차마 뭐라고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며 오열했다.
유족들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엄씨를 책임감 있고 성실한 가장이었다고 말했다.
자동차 판매장에서 근무하는 엄씨는 코로나19로 인해 생활이 어려우지면서 지난해부터 낮에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야간에는 대리기사를 시작했다. 치솟는 물가에 가족들을 부양하고, 딸들의 영어·피아노 학원비라도 보태기 위해서였다.
유족은 "낮에는 자동차 매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아침 9시가 다 돼 퇴근을 하며 가족들을 책임져왔다. 힘든 티도 안냈다. 이날도 대리운전을 나갔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평상시 식사도 한 끼 제대로 같이 할 시간 조차 없었는데 믿을 수 없어 가족들이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가해자에게 사과 한 마디 못 들었다"며 "애꿎은 사람이 음주운전으로 생명을 잃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음주운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 광산경찰서는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상 위험운전치사)로 30대 운전자 A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A씨는 만취상태로 운전하다 보행섬에 서 있던 엄씨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고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74%로 면허취소 수치인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보행섬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pepp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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