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처벌, 법률 개정 시급" 입법부 향한 판사의 한탄[사건의 재구성]

집주인 행세 수십억 보증금 가로챈 임대업자 최대 징역 12년
"서민 전 재산 노린 전세사기 범죄, 비난가능성 매우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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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뉴스1) 이시우 기자 = "입법부에서도 집단적 사기범죄에 관한 처벌의 정도를 정한 법률 마련이 시급하다."

법원이 수십억 원대 전세사기로 피해자를 양산한 임대업자에게 중형을 선고하면서도 더욱 무겁게 처벌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입법부를 향해 법률 개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충남 천안에서 주택 판매 및 임대업을 하던 A 씨(48)는 지난 2017년 임대관리업체를 설립하고 처남 B 씨(46)를 대표로 앉혔다. 이들은 오피스텔 소유자들을 대신해 임대 업무를 관리해주는 위탁관리 사업을 벌였다. 임차인들을 모집해 보증금 500만 원 및 월세 계약으로 오피스텔을 임대해주고 소유주들에게는 매달 수익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들은 약속을 어기고 임차인들에게 집주인 행세를 하며 보증금 2000만~6000만 원의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신규 임차인들로부터 받는 보증금은 기존 임차인에 대한 보증금 반환이나 직원 월급 지급 등에 사용했다.

돌려막기식 사업으로 자금이 부족해지자 해당 부동산으로 신탁 대출을 받기 위해 임차인들에게 임시 전출을 권유하기도 했다. 이들의 꾀임에 속은 임차인들은 우선변제권을 상실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기도 했다.

결국 2019년 초부터 피해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이 경찰에 고발, 고소하면서 피해 규모가 조금씩 드러났다.

A 씨 등은 자취를 감췄고 오피스텔 소유주들은 이들이 가로챈 보증금을 임차인들에게 돌려줘야 했다.

결국 이들은 2019년 12월, 자신들이 운영한 회사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에게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근로기준법 위반)로 기소된 이후 업무상배임, 사기, 횡령 사건 등으로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다.

모두 23개 사건이 병합됐고, 재판이 시작된 이후에도 관련 사건이 3건 더 기소됐다.

검찰은 이들이 업무상 배임으로 11억여 원, 사기 24억여 원, 횡령 1억 1400만 원 등의 피해를 오피스텔 소유주와 임차인들에게 끼쳤다고 봤다.

재판이 시작된 뒤에도 이들은 방어권 행사를 이유로 재판 절차를 지연시켰다. 재판 막바지에는 기존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사건이 하루빨리 해결되길 바랐던 피해자들은 법정에 나와 증언하며 고통을 곱씹어야 했다. 결국 재판은 5년 동안 33차례나 열렸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오피스텔 소유자들에게 업무상 배임의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1심 재판의 마침표를 찍게 된 대전지법 천안지원 류봉근 부장판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임대차 보증금 액수를 임의로 증액했고, 보증금을 받아 다른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이나, 직원 월급으로 사용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특히 류봉근 부장판사는 양형 이유를 설명하기 앞서 사기죄의 법률 개정 필요성을 지적했다.

그는 "사기죄의 법정형은 최고형이 징역 10년, 경합범가중에 의한 처단형의 상한도 징역 15년에 그친다"며 "따라서 이 법원은 국회가 만든 법률에서 정한 그 처단형 이상의 형을 선고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현행 법률은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다액의 재산상 손해를 끼쳐 주택임대차 거래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망가뜨리는 악질적인 범죄를 예방하고 처벌하는데 다소 부족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 법원은 입법부에서도 이 사건과 같은 집단적 사기범죄 등에 관하여 적절한 구성요건과 처벌의 정도를 정한 법률을 시급히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류봉근 부장판사는 "전 재산이자 거의 유일한 재산인 임대차보증금을 마련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치밀한 수법까지 동원해 속여 범행을 저질렀다"며 "서민을 대상으로 한 전세사기 범행은 편취된 금액뿐만 아니라, 생활고, 정신적 충격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부 피해자들에게 피해액을 변제한 것으로 보이지만, 경제적으로 궁박한 피해자들에게 우선 합의를 하자는 종용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적지 않은 피해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면서 최대한의 처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업무상 배임 피해액 중 18억 원은 무죄로 판단하고 9억 3200만 원만 인정했다.

법원은 A 씨에게 병합된 사건에 대해 징역 12년, 같은 혐의로 별도 진행된 사건들에 대해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6월을 선고했다. B 씨에 대해서도 도합 징역 5년 8개월의 형을 내렸다.

검찰과 피고인들은 모두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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