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숨 넘어가는데 "의사 없다"…80대 끝내 사망, 한살배기 5곳서 거부(종합)

상급병원 전공의 이탈로 지역 종합병원 등 2차 병원은 '북새통'
환자 지키는 의료진도 과부화…정부 "이달 복귀하면 정상 참작"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이탈을 시작한지 일주일째인 26일 대전 한 상급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앞에 119구급대원이 안내문을 바라보고 있다. 2024.2.26/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전국종합=뉴스1) 김종서 강교현 권영지 박민석 기자 김경현 수습기자 =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하는 전공의 단체행동이 7일째 이어지면서 의료진 공백이 결국 환자 사망으로까지 이어졌다.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지적이다.

전국 곳곳에서 의료 공백에 따른 응급환자 이송 지연 사례가 속출하는 가운데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한 의료현장에서 환자 곁을 지키는 의료진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오는 29일까지 사직 전공의들이 복귀할 경우 지난 책임을 묻지 않겠다며 오는 3월 면허 정지 및 사법 절차를 밟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다. 다만 정부 회유책에 떠난 의료진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심정지 환자' 50분 허비…호흡곤란 한살배기는 65㎞ 거리 이송

대전에 거주하는 80대 여성이 지난 23일 낮 12시께 의식장애를 겪다 쓰러져 119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구급대원들이 다급히 병원에 수용 가능한지를 묻는 사이 심정지까지 온 상황.

이 여성은 결국 병원 7곳으로부터 의료진 부재 등에 따른 ‘수용 불가’ 통보를 받은 53분이 지나서야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고 10여분 만에 사망 판정을 받았다.

한 30대 외국인 여성은 25일 오전 4시께 복통과 하혈 증으로 응급 진료를 희망했으나 전문의 부재와 기존 진료환자 외 불가 등 사유로 병원 14곳에서 수용불가 통보를 받아 3시간이 지나서야 대전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기지도 했다.

대전소방본부에 따르면 26일 오전 6시 기준 20일부터 발생한 구급이송 지연 사례는 총 23건으로 늘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과 진료거부로 인해 의료대란이 우려되고 있는 21일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대기하고 있다. 2024.2.21/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부산에서는 지난 21일 다리를 다친 70대 여성이 구급차를 타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다가 결국 경남 창원에 있는 한 병원까지 이송됐다. 구급차를 타고 환자 수용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헤매다 2시간가량 걸린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6일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을 시작한 지난 20일부터 이날 오전 5시까지 구급 차량의 응급환자 병원 이송이 지연된 사례는 총 42건이다. 날짜별로는 20일 4건, 21일 12건, 22일 10건, 23일 9건, 24일 3건, 25일 4건이다.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경남 창원, 김해, 진주, 양산, 울산 등으로 환자를 이송한 경우는 6건으로 파악됐다.

총 4건 이송이 지연된 경남 창원에서는 25일 오전 8시31분께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1세 남아가 지역 대학병원 5곳에서 거부당해 65㎞가량 떨어진 진주경상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상급병원 이탈에 2차병원 쏠림…"체력적 한계에 병원 떠날 지경"

상급종합병원 전공의 사직서 제출로 인한 여파가 지역 종합병원 등 2차 병원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전북지역 2차 병원인 전주시 덕진구 대자인병원에는 26일 오전 11시 기준 1419명의 환자가 몰려들었다. 이곳 하루 평균 내원객은 2000여명 수준으로 오전에만 평균 내원객의 70% 이상이 방문한 셈이다.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으로 근무를 중단한 20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병원 진료실 앞이 환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2024.2.20/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진료가 비교적 원활한 병원으로 환자들이 내몰리면서 이들의 볼멘소리는 오롯이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 몫이 됐다.

한 의료진은 "지난주보다 많은 환자들이 몰리고 있다.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로감을 호소하는 동료들이 많이 보인다"며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체력적 한계로 인해 2차 병원 의사들도 병원을 떠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토로했다.

대자인병원 관계자는 "상급병원에서 진료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진료 가능 여부를 묻는 분들이 많은 상황"이라며 "현재까지는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민 행안안전부 장관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2.26/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정부 "29일까지 복귀하면 정상 참작"…PA 간호사 시범사업도

현재까지 전국 주요 100개 수련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 10명 중 8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되는 가운데 정부는 29일까지 근무지로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에 대해 3월부터 면허정지 처분과 관련된 사법 절차를 밟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이상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재2차장(행안부 장관)는 26일 중대본 회의에서 "정부가 지금 상황의 엄중함을 직시하고 있는 만큼 마지막으로 호소한다"며 "집단 행동에 나선 의사들이 29일까지 떠났던 병원으로 돌아오면 지나간 책임은 묻지 않겠다"고 말했다.

중대본은 또 전공의 이탈로 발생한 의료 공백을 감당하고 있는 진료지원 간호사(PA 간호사)가 법적으로 보호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시범사업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kjs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