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천하로 끝난 미완의 혁명 [역사&오늘]
12월 4일, 조선 개화파의 갑신정변 발생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84년 12월 4일, 조선은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젊은 개화파들이 주도한 갑신정변이 일어난 것이다. 조선 말기 사회의 여러 문제점과 국제 정세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사건이었다.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윤치호, 유길준, 윤웅렬 등 젊은 개화파들은 우정국 낙성식을 기회로 정변을 일으켰다. 당시 우정국은 서양식 우편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상징적인 시설이었다. 개화파들은 이 행사에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을 예상하고, 이때를 기회로 정변을 계획했다.
개화파들은 수구파 인사들을 공격했고, 궁궐을 장악하고 고종 황제를 협박해 새 정부를 수립하고, 개혁 정강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왕권 강화, 신분제 폐지, 문벌 타파, 토지개혁, 상공업 장려, 교육제도 개선, 여성 지위 향상 등 근대화를 지향하는 사안들이었었다.
하지만 개화파의 기쁨은 3일 만에 끝나고 말았다. 청나라가 개입하여 개화파를 진압했기 때문입니다. 청나라 군대는 조선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개화파의 정변 소식을 듣고 즉각 개입하여 개화파 세력을 무력화시켰다. 주도 세력들은 일본으로 망명했고, 관련된 많은 사람이 처형되거나 귀양을 갔다.
갑신정변의 실패 원인은 다양했다. 개화파의 개혁 의지는 높았지만, 당시 백성들은 개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급격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청나라 등 외세의 강력한 개입은 갑신정변을 실패로 이끈 가장 큰 요인이었다. 개화파는 정변을 성공시키기 위한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
비록 갑신정변은 3일 만에 실패했지만,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갑신정변은 조선이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고, 개화사상 확산에 기여했다. 하지만 갑신정변의 실패는 조선의 근대화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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