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압박에도 굳건했던 한글 사랑 외길 [역사&오늘]

10월 19일, 독립운동가 최현배 탄생

외솔 최현배. (출처: Unknown author, 사진(1983),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94년 10월 19일, 외솔 최현배가 태어났다. 그는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위대한 학자다. 또한 우리 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지켜낸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최현배는 울산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해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 시기에 주시경 선생의 강의를 듣고 국어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졸업 후 1915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현 히로시마대학)와 교토제국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며 학문적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다졌다.

최현배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속에서도 꿋꿋하게 우리말 연구와 보급에 힘썼다. 조선어학회에 참여해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우리말 사전 편찬에도 헌신했다. 특히 '우리말본'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 주시경 선생의 연구를 계승하여 우리말 문법 연구의 기틀을 마련했다.

일제는 최현배를 여러 차례 투옥했다. 흥업구락부 사건과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그는 우리말 연구를 이어갔다. 감옥에서도 틈틈이 연구를 계속하며, 우리말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광복 후에는 연세대학교에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며 우리나라 국어학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다. 국어학 교재를 개발하고, 우리말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조선어학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한글 학회 활동을 이끌었다. 또한 문교부 편수국장 등을 역임하며 우리말 교육과 국어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교과서 편찬에 참여해 우리 아이들이 올바른 우리말을 배울 수 있도록 힘썼다.

최현배는 한글전용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자를 섞어 쓰면 글을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한글 전용이 필요하다고 보았다던 것이다. 최현배의 우리말에 대한 깊은 사랑은 우리 국민의 문화적 자존감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