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투쟁 [역사&오늘]

10월 1일, 조선어학회 사건 발생

조선어학회 사건을 다룬 책 '조선어학회 33인'(역사공간). (출처: 교보문고)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42년 10월 1일, 일제 경찰이 조선어학회 사무실을 급습해 회원들을 대거 체포하기 시작했다. 체포된 회원들은 가혹한 고문을 받았고, 허위 자백을 강요당했다.

1940년대 일제는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한글 사용을 금지하고, 한국어 교육을 폐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어학회는 우리말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표준어를 정립하며 사전을 편찬하는 등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42년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기차 안에서 우리말로 대화하다가 조선인 일본 경찰에 발각된 사건이 일어났다. 조선어학회의 활동이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위험한 단체로 규정하고 회원들 체포에 나섰다.

1943년 4월 1일까지 모두 33명이 검거됐다. 이 가운데 이극로·이윤재·최현배·이희승·정인승·정태진·김양수·김도연·이우식·이중화·김법린·이인·한징·정열모·장지영·장현식 등이 16명이 기소됐고, 12명은 기소유예됐다. 기소된 회원 중 이윤재와 한징이 옥중에서 사망했다. 공소소멸로 석방된 2명 외 나머지 12명은 치안유지법의 내란죄가 적용됐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가 3·1운동 후 부활한 한글운동을 탄압하고, 조선 민족 해방을 도모하는 단체를 해산시키고, 독립 정신을 고취하는 조선 최고의 지식인들을 단속할 수 있는 구실로 작용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우리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일제의 탄압에도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했으며, 그들의 노력은 오늘날 우리가 우리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2019년 개봉된 영화 '말모이'는 이 사건을 다룬 영화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