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SW 기업' 만성 적자…'짠물 투자'에 무너진 공공 시스템

[공공소프트웨어 진단下] '1% 미만' 예산·잦은 과업 변경
업계 "비공학적인 공공 제도…질적 평가 확대 시급"

전국 행정망 '먹통' 사태와 관련해 정부가 사흘 만에 "모두 복구됐다"고 밝힌 2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청을 찾은 민원인들이 민원 업무를 보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이날 전국 시군구·읍면동 주민센터에서 민원 서류발급 서비스를 재가동한다고 알렸다. 온라인 민원서비스인 '정부24'도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2023.11.2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1. 50대 여성 김열일(가명)씨는 최근 70대 여성 나변덕(가명)씨 집에서 일하다 황당한 일을 겪었다. 나 씨는 김 씨에게 5만원을 주고 '떡볶이'와 '치킨'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러다 1시간 뒤 마음이 바뀌어 비슷한 돈으로 '팔보채'를 준비하라고 말했다.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 참여한 중소·중견기업이 마주한 현실도 이와 같다. 빠듯한 예산 아래 잦은 과업변경은 국내 공공 SW 업계에서 흔한 일이다. 체계적이지 않은 제도가 공공 SW 기술의 질을 떨어뜨려 이번 행정망 먹통 사태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뉴스1) 오현주 기자 = 23일 업계에 따르면 공공 SW 사업 비중이 높은 국내 중소 SW 업체의 오랜 숙제는 수익성 개선이다. 국책연구기관 SW 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전체 매출(2020년 기준) 20% 이상이 공공 SW 사업인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0.5%에 그쳤다. 반면 비중이 20% 이하인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무려 6%였다.

'중소 SW 기업'은 2013년 정부의 대기업 공공 SW 진입 제한 덕분에 전환점을 맞았지만 질적 성장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

당시 정부는 "한국판 오라클을 키우겠다"며 야심차게 제도를 시행했다. 1980년대 미국 국방성에서 데이터관리시스템(DMS) 실력을 인정받아 글로벌 SW 기업으로 성장한 오라클 같은 사례를 만들겠다는 게 취지다.

10년이 지난 지금 초기 의도는 퇴색됐다. 크게 두 가지가 원인이다. 먼저, 정부가 공공 SW 사업에 쏟는 예산이 부족하다.

정부 예산에서 공공 SW 비중은 1%도 안 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3년 공공부문 수요예보에 따르면 올해 공공SW사업 예산 예정치(4조4545억원)는 전년대비 3.2%(1389억원) 증가했다. 그 중 대부분은 유지보수 사업으로, 신규사업 예산은 1조원 이내로 분석된다.

따라서 공공 SW 사업의 단가 자체가 지나치게 낮다. 구체적으로 공공 SW 사업은 기능점수(FP)와 투입인력(M/M) 기준으로 예산이 책정된다. 업계는 꾸준히 FP 단가가 높아져야 한다고 지적했으나, 2010년대 이후 2014년과 2020년에만 인상됐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정부24' 서비스 접속 오류를 일으킨 'L4'(엘포) 스위칭 장비는 라우터(적합한 경로 설정)에 밀착되어 있어 시스템이 꺼져도 전원을 재가동하면 문제가 빨리 해결된다"며 "평소 예산이 적다보니 기술 투자나 업그레이드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잦은 과업범위 변경도 원인이다. IT 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무리한 과업 변경은 공공 SW 사업 진행 과정의 큰 문제점"이라며 "목표한 프로젝트 수행 시점에 맞춰 업무 범위가 변경되면 꼼꼼하게 테스트를 못 하고 시스템을 오픈하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업무가 일정치 않고 처우가 열악해 담당 인력의 잦은 퇴사도 문제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SW 기업은 사업 흐름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중소기업 입장에선 보수 등 여러 악조건 탓에 이를 이어갈 수 있는 인력 관리가 어렵다"며 "특히 공공SW 사업은 업계에서는 돈 안 되고 욕만 먹는 사업으로 통하다 보니 봉고차에 아무나 태우듯, 무경력 사원을 급하게 뽑아 프로젝트 개발에 투입하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공공 SW 제도가 주요 선진국 대비 후진적이라고 본다. 채효근 한국IT(정보기술)서비스 산업협회 부회장은 "우리나라 공공 SW 제도는 해외 선진국에 비해 공학적이지 않고 발주처는 관리 중심으로 가고 있다"며 "사업 사이즈(규모)를 측정하는 FP 같은 수치가 국제 표준인데, 우리는 평가하는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공공 SW 제도의 질적 성장을 위한 대책으로는 해외처럼 질적 평가의 확대가 꼽힌다. 영국은 고난도 기술 요구 사업에서는 예산 범위 내 최고 기술점수 업체를 협상대상자로 선정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업체 대상 과거 이력 평가 강화도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 미국과 영국 정부는 모두 사업자 선정시 업체의 과거 계약 이행 정도를 평가 절차에 반영하는 계약이행 평가제도가 활성화 됐다. 국내에서도 계약 이력 평가가 있지만 해당 평가를 실제 실시하는 기관은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woobi12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