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에만 있는 대기업 입찰 제한·쪼개기 발주…정부24 마비 "예견된 사고"

[공공소프트웨어 진단上]자산 5조원 이상 기업엔 빗장
해외는 없는 사례…"역량 약한 작은 기업 위주 참여"

전국 행정망 '먹통' 사태와 관련해 정부가 사흘 만에 "모두 복구됐다"고 밝힌 20일 오전 서울 중구청을 찾은 민원인들이 민원 업무를 보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이날 전국 시군구·읍면동 주민센터에서 민원 서류발급 서비스를 재가동한다고 알렸다. 온라인 민원서비스인 '정부24'도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2023.11.2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오현주 기자 = 최근 전 국민이 쓰는 온라인 민원 서비스 정부 24의 장기간 접속 마비 사태로 '공공 SW(소프트웨어)' 입찰 제한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기업규모를 기준으로 입찰을 제한하는 방식의 재검토가 요구된다. 경쟁력 있는 기업이 참여해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 품질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이 기회가 원천적으로 박탈당하고 있어서다.

기업규모를 기준으로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입찰 기회를 박탈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정부는 올해 6월 예고한대로 1000억원 이상 공공 SW 프로젝트에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예정이지만 범위가 넓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존에 준비했던 대기업 공공 SW 참여 개편안을 곧 마련할 예정이다. 입찰 참여가 가능한 사업은 1000억원 이상 규모다.

문제는 최근 5년간 1000억원 이상의 대형 사업은 전체 6.5%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입찰제한을 조건부로 해제한다 하더라도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 품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입찰제도 지적은 행정망 마비가 '엘포'(L4)라는 네트워크(NW) 스위칭 장비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나왔다. 정부가 밝히진 않았지만 해당 장비를 납품하고 구축한 업체는 중소기업으로 알려졌다.

공공 SW 대기업 참여 제한 제도는 2013년 중소 SW 기업을 육성하고자 나왔다. 당시 정부는 자산 5조원이 넘는 기업의 공공 서비스 입찰 참여를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공공 SW 사업에서 대기업 참여에 빗장을 거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채효근 한국IT(정보기술)서비스 산업협회 부회장은 "대기업은 기술 투자 여력이 있지만, 중소·중견기업은 그렇지 않고 정부 공공 예산 중심으로 사업을 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대기업 역시 국가 안보 등 특정 부문에서는 공공 SW 사업 참여가 가능하지만 중소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사업 수주가 가능한 구조다. 때문에 컨소시엄에 참여한 중소기업 업무 비중이 상당하다.

이런 입찰제도는 쪼개기 발주를 낳았다. 전체 사업을 통틀어 맡을 수 있는 곳이 드물어 각 사업을 쪼개서 발주하는 구조가 깊게 뿌리 내렸다. 여러 중소기업이 모여 각자 사업을 맡다보니 일원화된 통제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쪼개기 발주의 원인인 입찰 제한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SW 기업은 사업 흐름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중소기업 입장에선 보수 등 여러 악조건 탓에 이를 이어갈 수 있는 인력 관리가 어렵다"며 "특히 공공SW 사업은 업계에서는 돈 안 되고 욕만 먹는 사업으로 통하다 보니 무경력 사원을 급하게 뽑아 프로젝트 개발에 투입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woobi12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