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컨설팅도 해줘요?"…중처법 "유예 아닌 개정 절실"
[막막한 중처법③]"개정으로 법 모호성과 불확실성 해소해야"
컨설팅 개편·확대 주문도…中企 82% '정부 컨설팅 받은적 없어"
- 이민주 기자, 이정후 기자, 김형준 기자
(서울=뉴스1) 이민주 이정후 김형준 기자 = 전문가들은 중소기업들이 '모르고 범법자가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중대재해처벌법 해석에 대한 모호성과 불명확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당장 법 개정을 할 수도 없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에 '유예'를 요구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대기업과 중소·영세 기업의 전혀 다른 경영 환경을 이해하고 이에 걸맞은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법 개정은커녕 유예조차 불발된 상황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중소기업이 숙지하고 따를 수 있는 '실천매뉴얼'격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7일 <뉴스1>이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한 결과 이같은 주장이 대세를 이뤘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처법에는 의무 주체부터 (안전을 위해)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부분이 모호하게 규정돼 있다"며 "가령 원청이 사업장의 수리, 유지 보수를 하청에 맡기는 경우에는 누가 (안전관리의) 의무주체인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전문가도 노동부도 명확히 답해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돼 있다 보니 50인 미만의 작은 기업들은 수사 과정에서도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법이 엉성하다 보니 (검찰에서) 보완 수사를 하게 되고 그렇다 보면 수사를 받기 시작할 때부터 (대표가) 엄청나게 불려 다니게 된다. 이 자체만으로도 소기업이 겪기에는 존속이 달린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이어 "법이 애초에 지킬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 전문가조차 (위법성을) 예측할 수가 없다"며 "자의적 법 해석이 난무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중처법) 시행령을 개정해 모호한 부분을 명확하게 해줘야 한다. 법 개정이 먼저고 그 이전에는 무자비한 법 해석·집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부가 수사기관에 지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중처법에서 규정하는 중대재해는 곧 사망인데, 사망에 이르는 경위나 원인에 대해서는 (해석을 둘러싼)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기계에 노동자가 끼어 사망하는 사고면 중대재해지만 사업장 내에서 개인의 부주의로 교통사고가 나는 경우 등에는 이를 기업이 안전관리 의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발생한 재해라고 볼 수 있냐"고 반문했다.
임 교수는 "인과관계나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중대재해로 보기 때문에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사전에 대비하기도 어렵다"며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안전조치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인력과 예산을 배정하도록 하는 등 '대기업'들이 지켜야 하는 수준의 의무를 나열하고 있다"며 "실상 중소기업이 이런 의무를 전부 지키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중소기업의 자금사정 등을 감안해 법을 개정해 (의무로 규정된 부분을) '의무이행사항'으로 간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2년 법 시행과 함께 중처법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홍보하고 있으나 다소 포괄적으로 기술됐다며, 업종이나 규모에 따른 세부적인 '실천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해야 한다는 당부도 나왔다. 여기에 컨설팅 사업의 다양화와 확대 시행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1053개 기업을 대상으로 중처법 이행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82%는 정부로부터 컨설팅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이 본부장은 "정부에서 컨설팅을 하고는 있다고는 하지만 서류 중심의 컨설팅은 의미가 없다"며 "공무원들이 직접 현장에 나와서 실질적으로 지킬 수 있는 사항이 무엇인지를 지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중소기업들이 궁금한 것은 '어떤 부분을 지키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지'다. 서류를 무엇을 구비해둬야 하는지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50인 이상 규모의 기업에서도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는 것이 어려운 현실인데 중소기업이 컨설팅을 1~2년을 받는다고 바로 할 수 있겠냐"며 "업종마다, 무엇을 만드냐에 따라 현장의 위험요소 등이 다 달라 파악하기가 어렵다. 지키지 않으면 강력한 처벌을 받는 법이 나왔는데 막상 (잘 몰라서) 법을 지키기가 어려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소기업에 '이것을 지키라'하고 구체적으로 제시를 해준다면 그들도 지키려고 할 것"이라며 "법에 (세부 지침이) 다 들어갈 수 없다면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세세하게 담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처법 준수를 위한 '안전관리 비용'을 원청업체나 정부가 실질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임채운 교수는 "결국 문제는 비용이다. 안전 관리에 필요한 조직, 인력, 예산을 충당할 수 없어서다"라며 "중소기업이 중대재해법에 저촉되지 않을 정도의 안전관리 능력을 갖추려면 납품단가에 안전관리 비용이 반영돼야 한다. 대기업 납품과 공공조달에 있어서 안전관리 예산을 별도로 책정하고 이 금액을 가격경쟁에서 제외하는 제도개선이 선행해야 한다"고 했다.
김성희 L-ESG 평가연구소 원장은 "(확대 시행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일시적인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가령 회사가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인력이나 설비에 변화를 줄 때 지원금(근로시간 단축 지원금)을 주지 않냐. 이처럼 기업이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작업 공정을 바꾸거나 인력을 늘릴 때 지원을 해 선의의 기업이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minj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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