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재정 10조 투입' 필수의료 정책…"구체성·현실성 떨어져"

예민한 논의 '특위'로 미뤄…재원 마련 방안 '불투명'
공유형 분만·100만원 지원…"의료현장 모르는 정책"

윤석열 대통령이 의료개혁 관련 내용을 발표한 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로 관계자가 들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의료 인력 확충 등 필수 의료에 10조 원 이상을 투입하고 비급여·실손 보험 제도 개혁하는 등의 내용을 발표했다. 2024.2.1/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천선휴 기자 = 정부가 1일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두고 의료계 안팎에서는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정부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지역필수의사제, 전공의 수련보조금 지원 등 현실성과 구체성이 떨어지는 정책이 대다수를 차지했다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 성남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을 주제로 개최한 민생토론회에서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가 담긴 4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소개했다.

의사들은 이번 정책 패키지에 의료계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박명하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비급여 진료를 축소시키는 것을 필수의료를 살린다고 발표한 부분, 개원 면허제 등은 의사단체에서 권유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의대 정원' 논의와 마찬가지로 의료계를 패싱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소재 대학병원의 한 외과 교수는 "'면허관리 선진화'를 위해 5년마다 신체·정신 상태를 조사하고 전문가·동료 평가를 거친 뒤 진료 가능 여부를 검증한다는 방안이 있는데 반발이 클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모두가 다 검증을 거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현재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은 3년마다 면허를 신고하는 형식적인 절차만 거치는데도 관리가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구체성과 현실성이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복지부는 지역필수의사제, 임상의사제 등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특위)에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일정이나 재원마련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지역 의료 강화 방침으로 이번 의대 정원 증원 분을 활용한다고 밝혔지만 배분 비율, 인프라 개선 등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박 회장은 "구체적인 내용이 없고 (시행하려는 정책의) 큰 제목과 소 제목만 간략간략하게 나와 있어서 어떤 정책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며 "(각 정책을 담당하는) 위원회 구성은 어떻게 되고, 역할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데 (의사들이) 정책을 두고 어떻게 평가 판단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려된다"고 했다.

필수 진료과 중심으로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을 확대한다는 조항을 넣었지만 산부인과, 외과계 등 일부과만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지원금을 명시하지 않았다. 현재 정부에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에게는 월 100만원의 수련보조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이를 두고 지방대학병원의 한 산부인과 교수는 "근무하고 있는 지방 병원에서 (정부 정책과는 별도로) 지원하는 의사들에게 지원금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전공의가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월급 100만원 더 준다고 (전공의들이) 꿈쩍하지도 않는다"며 "정부에서 지원금을 더 보조해주든지 아니면 의료보험 수가를 올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고위험 분만·신생아집중치료실을 보유한 종합병원과 산부인과 의원이 협업하는 '공유형 분만' 시스템도 의료 현장을 전혀 모르고 나온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환자를 일관성 있게 볼 수 있을 지도 문제일뿐더러, 고위험 환자 혹은 신생아 환자의 경우 (기존에 환자를 진료하지 않아) 환자의 특징을 잘 모르는 의사에게 환자를 맡기고 떠날 수 있겠느냐도 문제"라며 "대학병원과 개인의원의 분만실을 함께 쓴다고 하면 각 병원의 지분을 어떻게 나눌지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수치료, 백내장 수술 등 비중증 '혼합진료'(비급여+급여 진료)를 금지하는 방안을 두고서도 비판이 목소리가 컸다. 그간 병원에서는 비급여 진료인 도수치료를 받으면서 건보가 적용되는 물리치료를 함께 적용했는데 앞으로는 이를 금지한다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돈이 되는 시술과 처치는 가격을 통제하고 보험이 적용되지 못하게 막는다는 의미인데, 이는 곧 개원가의 수입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며 "필수의료로 의사들을 유인하기보다는 각종 규제로 개원가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것에 더 가깝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기 위해 수가(의료행위에 대한 대가)를 인상할 예정이다. 내시경 수술 등 저평가된 수술·처치 수가와 화상, 수지 접합, 소아외과·이식외과 등 고난도·고위험 수술 수가가 인상된다. 난이도와 위험도가 높고, 진료 외 소요시간이 긴 필수의료 특성을 반영한 보완형 공공정책수가도 새로 도입한다.

복지부는 필수의료 수가를 인상하기 위해서는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사전설명회에서 "기금이나 일반 예산으로 지원하는 사업도 있지만 수가를 통해서 하기 때문에 대부분 건보 재정이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필수의료에 투입되는 건보재정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2023~2032 건강보험 재정전망'에 따르면 현행 보험료율 인상 수준이 유지될 경우 적자는 20조원까지 확대됐다가 2028년에는 아예 적립금이 고갈될 전망이다.

아울러 정부는 지난달 말 건보 재정이 투입되는 간병비 급여화 대책을 발표했다. 오는 7월부터 간병비를 급여화하고, 간호인력이 간병을 해주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10조6877억원의 간병비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해 건보 수입은 줄어들 전망이다.

다만 미용의료 시장으로 유출되는 필수의료 인재를 막는 데는 일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날 복지부는 미용 의료 시술과 관련한 별도 자격제도를 도입해 시술 자격을 확대하는 안을 내놓았다. 영국과 캐나다 등은 보톡스 등 일부미용시술에 대해 별도의 자격제도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안이 나올 경우 의사만 할 수 있었던 피부, 성형외과 시술을 다른 의료직군도 할 수 있게 돼 경쟁이 치열해지게 된다.

복지부는 일정 기간 대학병원에서 임상 수련을 해야 개원을 할 수 있는 '개원 면허' 도입도 검토할 계획이다. 졸업 후에도 2년 간의 수련을 거쳐야 개원이 가능한 캐나다 의사 면허와 별도로 진료 면허를 취득해야 하는 영국처럼 필수의료에서 개원가로 유출되는 인재를 막겠다는 취지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