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살리겠다고 난린데…의료계, 때아닌 '개념' 논쟁 중

필수의료 개념 안 잡혔다…"의료계·정부·국민 소통해야"
정부 "모든 의료가 필수의료…개선 시급 분야부터 지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3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지역 및 필수의료 혁신을 위한 지역 순회 간담회'를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2023.12.13/뉴스1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최근 의료계의 최대 이슈라고 하면 당연 '필수의료'를 빼놓을 수 없다. 의대정원을 확대하는 문제로 정부와 의사 단체가 힘겨루기를 하는 뒷배경에는 '필수의료'가 자리를 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료계 안팎에서는 "필수의료가 무엇이냐"는 논쟁에 불이 붙고 있다. 개념이 지나치게 모호해 장기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26일 한국의료윤리학회에 따르면 최근 일부 의학계 연구진들 사이에서 필수의료의 개념부터 다시 정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학회도 학술지 최근호 주제를 '필수의료의 위기'로 정한 가운데 "개념 정립부터 안 되면 정책적 해결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진환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은 '필수의료 위기'라는 표현과 정책에 대해 "사람들의 필요를 반영하기보다, 국가가 정치적 책임을 면하면서 부담은 최소한으로 지는 방향"이라며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누군가'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필수의료의 위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이전 정부 의제인 '공공의료'를 지우고 관료조직의 숙원을 추진하며, 정책 결정에 자신들 의견을 적극 투입할 특정 대학 소속 의사들의 소원을 수리하는 동시에 국민의 정치적 지지를 끌어내는 성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위기라는 과장된 현실 인식을 통해 국가가 원래 행사하기 어려운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거나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책임회피 정치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누구의 필수의료고, 누구의 위기인지 명확히 짚고 가자고 강조했다.

6일 울산대학교병원에 지역 여성 장애인을 위한 '장애친화산부인과'를 개소했다. 이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석해 소아전용응급실을 둘러보며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2023.12.6/뉴스1 ⓒ News1 김지혜 기자

김미진 울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도 "정부가 정책으로 정의하는 필수의료 개념은 정책집행 정당성은 있어도 의료자원을 배분하는 실질적인 단일 원칙으로 작용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필수의료 범위와 지원에 대한 사회적 갈등은 큰데 합의된 개념은 없으니, 의료계와 정부 그리고 국민사이 의사소통의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 효율적인 논의를 이끌거나 장기적인 해결 방안 모색에 걸림돌이 된다"고 부연했다.

국회에도 '필수의료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등이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도로 각각 발의됐으나 법안 초입에 명시될 필수의료의 정의, 범위를 두고 합의가 안 돼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다.

관련 법안을 심의하던 지난해 12월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원회 도중 "필수의료가 정확하게 뭔지 모르겠다"는 참석자들의 질문들에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궁극적으로는 병원(의료) 서비스 모든 것"이라고 답했다.

박 차관은 "(개선) 시급성이나 위험의 정도를 고려해 소아과, 응급의료, 산부인과 몇 개 특정 과목들 중심으로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면서도 "의대증원과 함께 발표될 필수의료 패키지를 지켜보고 입법은 추후에 보완해달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일부 '미용 성형' 등을 제외한 국민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의료행위는 기본적으로 필수의료라는 입장이다. 모호하다는 의료계 일각의 지적 또한 잘 알고 있다고도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진료과별 규정도 쉽지 않다. 지역별, 시기별로 각기 다르다. 상대적 개념으로 접근한 뒤 우선순위를 감안해 지원하겠다"며 정부가 지역 필수의료 전담 조직(필수의료총괄과·지역의료정책과)도 만든 취지를 의료계에서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복지부는 의대증원을 통한 의사 확충, 필수의료 분야 투자 확대, 의료사고 처리시스템 합리화, 병원 인력구조 개편, 상생·협력 기반 의료전달체계 구축 등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그러나 아직 대통령 업무보고 일정이 정해지지는 않았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