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자사주 매입'으로 MBK 친다…法 가처분 판단 '분수령'

외부 조달 없이 '2조 실탄' 투입…"주주 환원이 배임? 어불성설"
'자사주 취득 금지' 경우엔 1.3조 대항공개매수…'투트랙 전략'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과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동현 신건웅 기자 =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자사주 매입'을 통해 경영권을 지키는 전략을 '플랜 A'로 세웠다. 보유현금이 충분한 만큼 자사주 매입을 통해 영풍-MBK파트너스의 지분 확보를 저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백기사(우호세력)를 끌어모아 대항공개매수에 나서는 방안도 여전히 플랜 B로 살아있는 카드다. 자사주 매입과 대항공개매수가 함께 이뤄질 것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010130)은 늦어도 2~4일 중 대항공개매수 또는 자사주 매입 공시에 나설 전망이다. MBK파트너스와 영풍(000670)의 공개매수 마감일인 10월 4일까지 징검다리 휴일(1·3일)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거래일은 이틀뿐이다.

"2조 실탄 준비됐다"…'자사주 취득 금지 가처분'이 분수령

현재 고려아연 지분은 영풍-MBK가 33.1%를, 최윤범 회장은 현대차·한화·LG화학 등 우호세력을 합쳐 약 34%를 확보 중이다. 국민연금과 자사주를 뺀 23%가 승부처인데, 이중 기관·외국인 6%는 최 회장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된다. 최 회장은 6% 이상의 지분을 추가 확보, 경영권을 방어하는 전략을 고민 중이다.

최윤범 회장은 '선(先) 자사주 매입·후(後) 대항공개매수'라는 투트랙 전략을 최종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메리츠금융그룹 등과 접촉하며 대항공개매수에 필요한 '실탄'을 확보하는 동시에, 법원 판단이 나오는 즉시 회삿돈으로 대규모 자사주를 매입한다는 구상이다.

자사주 매입은 가장 안전하게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이다. 사모펀드(PEF) 등 외부로부터 자금을 충당하는 대항공개매수는 결국 빚으로 지분을 사는 방식이라 부담이 크다. 높은 금리와 수익률을 약속하고 자금을 유치했을 공산이 높아 재무 부담은 물론 다시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사주 매입에 투입할 자금도 넉넉하다. 고려아연은 순현금 8000억 원에 기업어음(CP) 발생으로 조달한 4000억 원, 금융권 차입 등을 합쳐 2조 원이 넘는 유동성을 확보 중이다. 법원이 '자기주식 취득금지 가처분'을 기각할 경우, 고려아연은 자체적으로 MBK-영풍의 과반 지분 확보를 저지할 수 있다.

관건은 법원의 판단과 배임 성립 여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는 지난달 27일 MBK와 영풍이 신청한 가처분 1차 심문기일을 진행, 심리 종결했다. 재판부는 이르면 이날, 늦어도 공개매수 마감일인 10월 4일까지 결정을 내릴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법원의 기각 결정이 나오는 대로 자사주 매입을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MBK와 영풍은 '자사주 매입은 배임'이라고 주장한다. 공개매수 기간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졌고, 그보다 더 비싼 값에 자사주를 매집하는 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라는 것이다. 반면 고려아연은 "자사주 매입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높은 가격에 주식을 넘긴) 주주이므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 주주환원의 일환"이라며 배임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고려아연은 자사주를 추가 매집할 경우 향후 일부는 소각해 주주가치 제고에 활용할 것으로 예상이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플랜B 대항공개매수도 병행…'최소 방어선'에 1조 쏟을 듯

법원이 MBK-영풍의 손을 들어줘 자사주 취득이 막힐 경우에 대비한 '대항공개매수'도 플랜B로 함께 고려하고 있다. 최윤범 회장 측은 글로벌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를 비롯해 한화그룹, 한국투자증권, 메리츠금융그룹 등과 접촉하며 자금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대항공개매수로 방향을 틀었다면 마지노선은 늦어도 10월 2일이다. 최 회장은 특수목적법인(SPC) 또는 자금 대여 등으로 대항공개매수 자금을 조달할 예정인데, SPC 설립과 자금 예치 및 투자확약서(LOC) 발급, 금융감독원 신고 등 사전 절차를 9월 30일까진 끝내야 한다.

최 회장이 대항공개매수에 나서면 최소 1조 원의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보인다. MBK-영풍 측이 공개매수 가격을 66만 원에서 75만 원으로 높인 상황이라, 최 회장은 80만 원 수준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경영권 방어에 필요한 최소 지분(6%) 매입에 필요한 자금은 약 1조3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메리츠금융은 최 회장 측에 3000억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민연금 침묵 지킬까…금감원은 장외전 과열에 '경고'

기존 우호세력의 참전과 국민연금의 향배도 변수다.

고려아연 지분 7.75%를 쥐고 있는 한화그룹이 대표적인 전략적 투자자(SI)로 거론되고 있다. 최윤범 회장은 지난 추석 연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비밀 회동을 갖기도 했다. 앞서 한화는 이번 공개매수 사태와 관련해 "고려아연과의 사업협력 관계가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고려아연의 지분 7.83%를 보유 중이다. 영풍-MBK와 최 회장 어느 쪽이든 국민연금의 지지만 이끌어 내면 쉽게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다. 다만 국민연금은 그간 경영권 분쟁에 대해서는 대체로 거리를 둬 왔다. 지난해 MBK가 한국앤컴퍼니를 대상으로 실시한 공개매수 때도 국민연금은 침묵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공개매수 기간 양측이 지나친 '장외전'을 벌이는 것에 경고를 날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7일 오후 부원장회의에서 "공개매수와 관련한 근거 없는 루머나 풍문 유포 등으로 시장 질서 교란행위 등 불공정거래 발생 여부에 대해 시장 감시를 실시하고 적발된 불법 행위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정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