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이냐 횡포냐" 엔비디아 '반독점' 조사…삼성·SK HBM 영향은

美 정부, 엔비디아 상대로 AI 칩 독점 및 고객사 불이익 등 살펴볼듯
'HBM 공급' SK·삼성 여파 우려…"엔비디아 지배력 공고해 실적 영향 없어" 전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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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재현 기자 = 'AI(인공지능)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반독점 조사가 임박하면서 반도체 시장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특히 HBM(고대역폭메모리)을 고리로 엔비디아와 엮여 있는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에까지 여파가 닿을지 관심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미 정부는 엔비디아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 조사에 착수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미 법무부가 엔비디아에 소환장을 보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엔비디아 측이 이를 부인했지만 현지에서는 조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엔비디아는 자사 AI 가속기를 쓰는 기업들이 다른 AI 가속기 공급업체 제품을 이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자사 AI 가속기를 독점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준다는 의혹을 받는다.

흔히 AI 반도체 또는 AI 칩으로도 불리는 AI 가속기는 학습·추론에 필수적인 반도체 패키지로, GPU(그래픽처리장치)와 HBM을 결합해 만든다. 엔비디아 AI 가속기의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은 80% 이상이다.

미 정부는 엔비디아의 이스라엘 스타트업 '런에이아이'(RUN:ai) 인수 과정도 들여다보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 4월 런에이아이를 7억 달러(약 1조 원)에 인수했다.

런에이아이는 적은 AI 가속기로도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는 'GPU 가상화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런에이아이 기술이 보급된다면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수요가 감소할 수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이런 우려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아예 런에이아이를 사들였다는 말도 나온다.

엔비디아 측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엔비디아 제품의 벤치마크(성능 평가) 결과와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따져보면 알 수 있듯, 우리는 실력으로 승부하고 있다"며 "고객들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설루션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미 정부가 조사를 마치면 고발 가능성이 크다. 앞서 구글, 아마존, 애플 등 다른 빅테크들도 소송을 피하지 못했다.

이 중 구글은 미 법무부가 제기한 검색 독점 소송에서 지난달 패소했다. 구글은 즉시 항소에 나서는 등 적극 대응을 하고 있어 반독점 위반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이 나오기까지는 수 년이 걸릴 전망이다. 미국 반독점법 소송에서 패소가 확정되면 독점 사업 운영 방식을 바꾸거나 독점 사업 일부를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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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가 반독점법 위반으로 코너에 몰릴 경우 국내 반도체 기업에도 일부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엔비디아 공급망에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이 속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HBM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엔비디아의 HBM 최대 협력사는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초부터 5세대 HBM(HBM3E) 8단을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고, HBM3E 12단 제품도 이달 말 양산해 4분기 납품할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HBM4도 내년 양산을 준비 중이다.

SK하이닉스 HBM의 엔비디아 의존도를 감안하면 성장세가 다소 둔화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욜그룹은 세계 HBM 시장 규모가 올해 141억 달러(약 19조 원)에서 2029년 377억 달러(약 52조 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HBM 큰손'인 엔비디아가 주춤할 경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보다는 덜 하지만 삼성전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4세대 HBM 공급을 시작했지만 5세대는 품질 인증 절차가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가 HBM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려면 차세대 HBM의 엔비디아 납품이 필수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3%, 삼성전자 38%, 미국 마이크론 9% 등이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반독점 이슈로 소극적 행보를 보이면 삼성전자의 HBM 시장 도약이 더딜 수도 있다.

다만 엔비디아 반독점이 국내 기업에 미칠 후폭풍이 '기우'라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반독점 이슈가 있더라도 이미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의 지배력이 약화하기 어렵고 AMD 등 다른 빅테크들의 HBM 수요도 여전히 견조한 상황"이라며 "엔비디아 주가 급락에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동반 급락하는 자본시장과, 실물 HBM 시장은 분명히 다르다"고 말했다.

kjh7@news1.kr